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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클럽 & 마니아-할리 데이비슨 동호회 "호그" 한국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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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클럽 & 마니아-할리 데이비슨 동호회 "호그" 한국지부

입력
2003.10.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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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둥, 투둥, 투두둥."5일 오전 충남 태안군 안면도 웨스틴 레저타운 앞. 800cc 이상의 대형 오토바이 400여대가 일시에 내는 시동 소리가 하늘을 뒤흔들었다. 엇박자 말발굽 소리를 닮았다는, 그 유명한 할리 데이비슨의 진동소리였다. 400여대가 동시에 울리는 진동 소리만으로도 보는 이들의 기를 죽였다. 할리 데이비슨 전세계 공식 동호회인 '호그'(H.O.G)의 한국지부가 올 들어 두번째 마련한 랠리 행사였다.

2박3일 일정의 마지막 순서는 전체 그룹이 안면도에서 출발, 충남 청양군 칠갑산에 이르는 100㎞를 달리는 것. 소리도 소리지만, 폼 하나로 먹고 산다는 그 할리가 떼 지어 가는 모습 자체가 장관이다.

반항과 자유에도 폼은 있다

팔을 쭉 뻗은 채 대형 오토바이에 올라탄 모습을 빼고는 '이지라이더'를 상상하기 어렵다. 오토바이가 없었다면, 대체 그들의 자유를 뭘로 표현할 수 있었을까. 가죽재킷에 은빛 광채의 오토바이가 없었다면 터미네이터의 카리스마가 어디서 나오랴. 오토바이 없는 '이유없는 반항'은 얼마나 초라했을까.

그러니까 반항과 자유, 그 카리스마에도 폼은 있어야 하는 법. 그 대명사가 올해로 탄생 100년째를 맞은 '할리 데이비슨'이다. 할리를 전설로 만든 V자형 2기통 엔진에다 위로 치솟은 손잡이, 거리의 제왕이라도 되는 듯한 좌석구조 등 할리 데이비슨은 몸 전체가 도발 그 자체다. 그 기품이 바로 멋에 죽고, 멋에 사는 50∼60년대 미국 청년들의 젊음과 낭만의 아이콘이었던 것.

그렇다고 해서 할리 데이비슨이 여전히 젊음과 반항의 징표와도 같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80년대 무렵부터 보다 날렵하고, 스피디한 일본제 오토바이 제품이 시장을 장악한 이후로, 할리는 한 시대 문화를 지배했던, 향수 섞인 클래식 제품으로서 견고한 안정성이 뒷받침된 '명품 오토바이'로 자리를 잡았다.

회원들 주축은 40代

호그 동호회 회원들의 주축은 바로 40대다. 가죽재킷을 입고 할리를 모는 이들이 철없는 폭주족이겠거니 여기는 것은 뒤떨어진 시대 감각이다. 대부분 사회에서 자리를 잡은 성공한 '신사'들이다. 가장 싼 모델이 1,000만원을 넘는데다 옵션을 붙이다 보면 오토바이 한대 가격이 3,000∼4,000만원대에 이르는 것만 봐도 그렇다.

지난해부터 할리를 타고 주말이면 근교 드라이브에 나서는 박원일(46) 황정희(45)씨 부부는 "위험하다고 생각하겠지만 할리는 속도보다 외양과 안정성에 치중하기 때문에 신뢰감이 들어 좋다"며 "교통이 워낙 막히는 요즘에는 차보다 오토바이가 더 실용적이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할리의 검정색 가죽재킷 패션은 뒤늦은 젊음의 발산인 셈이다. 할리를 타고 백화점 쇼핑에도 나선다는 황정희씨는 "바쁘게 사느라 젊었을 때 누리지 못했던 자유로움을 다시 찾은 기분이다"며"가죽재킷과 부츠를 바라보는 시선도 많이 바뀌어 지나가는 사람들도 손을 치켜들며 좋아한다"고 말했다.

호그 동호회 회장은 김종인(63·사진) 전 영진약품 대표이사. 11년 동안 대표이사를 지냈던 영진약품이 IMF 위기에 부도를 맞고 어려움에 처하자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오토바이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다시젊음 속으로 돌아간 느낌이다"이며 "할리를 통해 삶의 활력과 행복을 다시 찾았다"고 스스럼없이 말했다. 할리 마니아에는 이렇게 뒤늦게 오토바이에 뛰어든 중년층이 의외로 많다.

할리 마니아들을 무법자의 아이콘처럼 여기는 것이 얼마나 큰 착각인지도 이 때문. 스스로를 '오토바이를 타는 신사'로 부르는 김종인 회장은 "외국의 문화가 어떤지는모르겠지만, 국내의 할리 동호회는 교통법규를 철저히 준수하면서 그 속에서 자유로움을 추구한다"고말했다.

중년들에게 할리는 그러니까 젊음의 보상과도 같은 것이다. 40대에 오토바이를 새롭게 배운 이들에게 할리는 곧 되찾은 젊음이자 열정이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할리 데이비슨 이것이 궁금하다

똑같은 할리는 없다.

'할리에는 똑 같은 제품이 없다'는 말은 고객이 자의적으로 고를 수 있는 옵션의 폭이 매우 넓다는 뜻이다. 실제로 공장에서 출시된 기본 모델 자체는 뭔가 하나 빠졌다는 느낌이 든다. 고객들이 장치를 새롭게 부착해, 자기 개성에 따라 오토바이를 완성해가라는 얘기다. 거의 모든 장치가 옵션으로 준비돼 있어 아예 오토바이 자체를 완전히 개조할 수 있을 정도다. 오토바이 손잡이만 해도 20여가지. 할리 특유의 강한 엔진 소리도 옵션이다. 애초 공장에서 나오는 제품은 엔진소리가 크지 않지만, 소리를 우렁차게 하는 머플러를 옵션으로 장착했기 때문이다. 평균 옵션 비용은 1,000만원대에 이른다.

할리의 대표기종

기본적인 모델은 24가지가 있으며, 크게 네가지 모델군으로 나뉜다. 대표적인 모델군은 소프트테일(Softtail)로, 고전적 제품을 이어받아 남성적 외양이 돋보인다. 터미네이터가 탄 오토바이도 이 모델군이며 국내에서도 가장 인기가 좋다. 가격은 2,000만원 후반대.

투어링 모델군은 말 그대로 장기 투어가 가능하도록 만든 스타일. 편안한 승차감을 강조한데다 CD플레이어에다 스피커가 8개가 달렸고, 수납공간도 여러 개가 달려 있는 등 덩치가 가장 크고 장치도 많다. 가격은 3,000만원 후반대로 할리 기종 중 가장 비싸다.

스포스터는 대형 오토바이를 다소 경량화해 운동성을 강조한 모델. 1,000만원 초중반대로 할리 제품 중 가장 싸다. 다이나 모델군은 소프트테일에 스포스터의 운동성을 겸비한 모델군이다. 가장 싼 제품은 1,120만원의 스포스터 시리즈 XLH833이며 가장 비싼 제품은 3750만원의 투어링 시리즈 FLHTCUI이다.

속도

물리적으로 최고 시속 200㎞까지 낼 수는 있지만, 할리에서 속도를 기대해서는 안된다. 할리 제품은 상체를 꼿꼿이 세워 타기 때문에 빠른 속도를 낼 경우 풍압을 견디기 힘들다. 시속 80∼100㎞가 가장 적당하다.

■할리 데이비슨 100년史

올해는 할리 데이비슨 탄생 100주년. 할리 데이비슨은 단순한 오토바이 브랜드를 넘어 미국 문화의 한 상징이자 한 시대를 지배한 라이프 스타일로서 20세기를 풍미해왔다.

1903년 미국 밀워키의 자전거 공장에서 일하던 월리암 할리와 아서 데이비슨이 '페달을 밟을 필요가 없는 자전거' 3대를 제조하는데 성공한다. 이것을 시초로 오토바이 산업이 싹을 틔우게 되는데 성장의 기폭제는 1차 세계대전.

할리 데이비슨은 군용 오토바이로 보급되고, 국내 내수 판매 등에 힘입어 세계에서 가장 큰 오토바이 제조사로 성장했다. 1950년대, 60년대 제임스 딘의 반항적 스타일과 히피 문화를 거치면서 오토바이는 젊음을 구가하는 최고의 무기였고, 할리 데이비슨은 그 대명사로 미국 청년문화의 상징이 됐다.

그러나 1970∼80년대 빠른 속도감을 내는 중소형 일본제 오토바이가 급성장하면서 입지가 크게 흔들렸다. 이후 청년들의 기호 변화 속에서 할리 데이비슨은 '불량배 집단'과결부된 이미지를 벗고 품질과 신뢰성에 기반을 두며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에게도 어필하는 '명품오토바이'로 자리를 잡아갔다.

국내에서는 한국전 때 미군에 의해 처음 선보였고, 이후 경찰청과 헌병대의 싸이카로 들어왔다가 1980년대 들어 일반인에게 보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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