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기고/농림부의 직무유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기고/농림부의 직무유기

입력
2003.10.17 00:00
0 0

농림부는 최근 농업협동조합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그런데 이번 개정안은 농협개혁의 핵심인 농협중앙회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의 분리(이하 신·경분리)를 철저하게 외면하고, 현행 농협법에 규정된 농림부의 의무를 스스로 방기하였다는 점에서 놀라움을 금할 길 없다.농협중앙회의 신·경분리는 적어도 지난 10년간 늘 농협개혁 과제의 핵심적 자리를 차지해왔다.

그 이유는 크게 3가지이다. 첫째, 중앙회의 경제사업이 회원조합의 경제사업을 지원하는 연합회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신용사업 의존체질을 벗어나야 한다. 둘째, 금융자유화에 따른 경쟁의 심화로 중앙회의 신용사업의 여건이 점차 나빠지고 있기 때문에 신용사업도 전문화하여 경쟁력을 키우지 않으면 안 된다. 셋째, 중앙회가 회원조합에 대한 지도·교육·감독 및 농정활동에 전념하는 본래의 중앙회(비사업조직)로 탈바꿈하기 위해서는 신·경분리가 필요하다. 나아가 지역 농협이 돈 놀이 중심에서 농산물의 유통·가공 중심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도 신·경분리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광범한 사회적 합의가 형성되어 있었고 수 차례 기회가 있었지만, 개혁 대상인 농협중앙회의 반발과 농림부 관료의 미온적 태도로 인해 번번이 무산되었다.

현행 농업협동조합법은 제정 당시 최대의 쟁점이었던 통합 농협중앙회의 신·경분리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농협법 부칙 제16조를 이용해 교묘히 피해 나갔다. 이 법에 기초해 금융연구원을 중심으로 신·경분리에 관한 연구가 진행되었고, 농림부내에 신·경분리추진협의회가 설치·운영되었으며, 이와는 별도로 농협중앙회는 농협개혁위원회를 설치하여 신·경분리를 논의하였다.

그 동안의 연구 논의 결과 농협중앙회의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분리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분명하게 드러났고, 이를 농협중앙회도 부정하지 않는다. 이에 대한 연구를 담당한 금융연구원은 일부 전제 조건을 달기는 했지만 신·경분리가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농협중앙회의 농협개혁위원회에서도 분리 시기에는 이견이 있었지만 신·경분리 자체에는 합의했다.

그렇다면 농림부는 당연히 이번 개정안에 농협중앙회의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의 분리를 언제 어떻게 시행하겠다는 내용을 담았어야 한다. 그러나 개정안은 중앙회 회장을 상임에서 비상임으로 전환하는 등 지배구조 문제를 부분적으로 다루고 있을 뿐, 신·경분리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이는 농림부의 고의적인 직무유기이고, 농협개혁에 대한 사회적 열망을 철저하게 외면한 것이다.

농협중앙회의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의 분리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이다. 기득권자들은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의 양대 부문이 필요할 때 서로 돈을 쉽게 갖다 쓸 수 있다는 반대 논리를 한가히 전개할 때가 아니다. 농협의 개혁 없이는 현재의 농업위기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지금과 같은 중앙회 구조로는 농협의 경제사업이 활성화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중앙회의 신용사업도 곧 존립 위협을 받을 것이다.

중앙회의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분리하여 각각 별도 법인이 담당하도록 하여 전문성과 경쟁력을 제고해야 한다. 또 중앙회는 비사업체로 전환하여 농정활동 및 지도·교육을 담당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농업협동조합법이 개정되어야 한다.

박 진 도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