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재신임 제안과 관련해 주목 받고 있는 변수중 하나는 '호남 민심'이다. 대선에서 노 대통령에게 90% 이상의 표를 몰아줬지만 민주당 분당과 노 대통령의 탈당 등에 따라 뚜렷한 이반현상을 보여왔다. 그러나 11일의 본보 여론조사 결과 호남지역에서 전국 최고인 65%의 응답자가 '노 대통령을 재신임하겠다'고 답해 눈길을 끌었다. 과연 호남 여론의 실체는 무엇인지 긴급 현지 르포를 통해 알아봤다."아따, 얼마나 힘들었으면 재신임 투표 하자 했것소. 민주당 분당 등 맘에 안든 것도 많지만 그래도 내가 뽑은 대통령잉께 밀어줘야제."
광주에서 15년째 택시 운전을 한다는 김영동(45·광주 산수동)씨는 노무현 대통령 이야기가 나오자 아무 군소리 없이 지지의사를 밝혔다. "호남소외론 등이 나오는데 노 대통령을 미워하는 손님은 없더냐"는 물음에 그는 "지금처럼 (기득권층에) 발목 잡혀 갖고는 누가 해도 마찬가징께 노 대통령을 믿는 수밖에 없지라우"라고 답했다.
재신임 투표 제안 이후에 호남 민심은 노 대통령의 '성급한 판단'과 '극단적 수단 동원' 등은 비판하면서도 원활한 국정수행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지 않았겠느냐"며 동정하고 이해하는 여론이 다소 많은 듯 하다. 여러가지 실망한 부분도 있지만 '노풍(盧風)의 근원지'로서 노 대통령에 대한 애정, 개혁에 대한 기대가 아직은 적잖이 남아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공무원 임모(58·광주 동구 운림동)씨는 "노 대통령의 국정수행 능력은 솔직히 실망스럽다"고 했다. 그는 "하지만 검찰과 국세청 등 사정기관의 독립성 보장 등 원칙적 개혁에는 찬성한다"며 "대안 없는 현실에서 재신임을 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초등교사 강모(55·전북 군산시 나운동)씨는 "국회가 사사건건 발목을 잡은 것도 부인할 수 없고, 취임 1년도 안됐는데 대통령을 교체할 수도 없지 않느냐"며 "노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줄 생각"이라고 재신임 편에 섰다.
"솔직히 노 대통령이 맘에 드는 건 아닌데, 불신임되면 한나라당에게 정권이 넘어갈 수도 있고 나라가 혼란해질까 봐 걱정돼 어쩔 수 없이 밀어줘야겠다"는 의견도 상당하다. 농민 송태종(61·전남 담양군 고서면)씨는 "현정권을 불신임한다고 해서 전라도 사람이 한나라당을 지지하겠느냐"며 '대안부재'를 지적했다. 자영업자인 소찬중(41·전북 전주시 삼천동)씨는 "현정권의 전북 홀대와 국정운영에 불만이 많지만 불신임되면 나라가 혼란하고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가 더 나빠질 것 같아 울며 겨자 먹는 격으로 찍어줄 생각"이라고 토로했다.
이에 비해 불신임을 주장하는 이들은 주로 "기득권 세력에 밀린 아마추어 국정운영, 측근 비리와 민주당 탈당 등에 배신감과 실망을 느꼈다"는 등의 이유를 댄다. 광주에서는 최근 '광주 노사모'가 다시 활동을 재개한 것을 놓고 "대통령 측근들이 각종 비리에 연루되면서 정국이 꼬이고 있는데 시기적으로 적절하지 않다"는 부정적 반응도 나오고 있다.
광주 서구 화정동 금호전자상가에서 만난 회사원 정종만(41·광주 북구 중흥동)씨는 "대통령이 임기중에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리더십을 발휘해 정국을 능동적으로 헤쳐 나가야 하는데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재신임을 물으려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라고 비판했다. 정씨는 "정국을 돌파하는 방법이 꼭 국민투표 밖에 없느냐"고 반문했다.
전주시 효자동에서 음식점을 하는 최광영(42)씨는 "개혁을 주장한 대통령의 측근이 각종 비리에 연루되는 등 역대 정권과 다른 점이 무엇이냐"며 "재신임 제안은, 학생이 부모에게 원하는 것을 사주지 않으면 학교가지 않겠다고 떼쓰는 것과 같다"고 비난했다. 대학생 김영훈(28·광주 서구 화정동)씨는 "호남 사람이 잔정이 많아 한번 믿으면 끝까지 가는 경향이 있는데 여론조사에서 재신임 의견이 70%에 육박한 것은 대선 때의 지지도 90%에 비하면 오히려 떨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전남대 언론홍보연구소 박세종(38) 책임연구원은 "호남에서 재신임 여론이 높은 것은 한나라당에 대한 견제와 개혁을 바라는 주민 의사가 반영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광주=김종구기자 so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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