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만 안주하지 말고 기업들은 이제 세계로 나가야 합니다." 국내 알로에 업계 1위인 남양알로에의 이병훈(41·李秉薰)사장은 일년의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보낸다. 본사는 국내에 있지만 주 원료인 알로에 생산 농장과 해외 지사가 북미, 러시아, 아시아 등지에 퍼져 있어 해외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더 많다. 현지 법인과 공장을 시찰하고 수시로 경영 상태를 체크하는 글로벌 CEO로서의 역할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이 사장은 지난해 전세계 저명 인사들의 모임인 세계경제포럼(WEF)이 지정하는 아시아 차세대 지도자 100명 가운데 18명의 한국 대표로 선정되기도 했다.이 사장은 알로에 사업을 하면서 사명감을 갖게 됐다고 말한다. '서양의 인삼'이라 불리는 알로에를 연구·개발해 회사를 세계 최고의 건강식품 기업으로 성장시키고, 인류의 건강 증진에도 기여하겠다는 것이 그의 희망이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이 사장은 3년간에 걸쳐 서양인들도 하지 못한 알로에의 200여개의 성분 구조를 세계 최초로 과학적으로 규명해 냈다.
"인삼은 우리 것이지만 스위스가 최대의 제조, 수출국이듯 남양알로에는 세계 최대의 알로에 생산 기업입니다. 아직까지 알로에의 신비한 효능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적이 없습니다. 그 일을 우리가 해낸거죠. 알로에 건강식품과 신약 제품의 생산에서 연구·가공·판매까지 일괄하는 에코넷 시스템을 통해 천연물 산업 분야에서 세계 1위 기업이 될 것입니다."
창업주 이연호(96년 작고) 회장의 뒤를 이은 2세 경영인인 이 사장은 15년 전만 해도 교수를 꿈꿔왔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사회학 교수가 되고자 했던 그는 1982년 연세대 영문학과 2학년때 도미, 위스콘신대에서 사회학 석사 과정을 마쳤다.
미국에 머물면서 부친의 미국 지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그는 '알로에'라는 서양 식물에 흥미를 갖게 됐다. 그 후 알로에 사업에 뛰어들어 88년 법정관리 상태였던 미국 알로에 회사를 인수, 알로코프로 회사명을 개명하고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그는 대규모 해외 농장을 잇달아 사들이면서 세계 경영의 초석을 다져 나갔다.
"알로에를 처음 접하는 순간 좋은 사업 아이템이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습니다. '노력해서 키우고, 공해 없는 좋은 제품을 만들고, 그것을 복용해 사람들이 건강하고 아름다워지는 선순환이 이뤄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알로에는 인삼보다 키우기 쉽고 효능은 뛰어난 식물입니다."
이 사장은 국내 기업들도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해외에 나가 땅을 사들여 농사를 지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외국에는 아직 경제성 있는 토지가 많이 있는데 우리나라 기업들이 국내만 고집한다는 것이다. 이 사장은 앞으로 세계 무역 관행의 대세가 될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대비해서라도 국내 기업들이 해외에서 고부가가치 농작물을 재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나라는 땅 값이 너무 비싸고 임금도 높아 1차 산업인 농업은 경쟁력을 갖기 힘듭니다. 지가는 100배 가까이, 임금은 10배 정도 높습니다. 하지만 해외에는 농사를 짓겠다고 하면 공짜로 땅을 주는 데가 많습니다. 농사는 사업과 달리 1∼2년이 아닌 10년 이상 장기적 비전을 보고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세계무역기구(WTO)를 중심으로 가속화하는 농산물 개방 압력에 대처하는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사장은 남양알로에가 세계 1위의 알로에 공급사로 발돋움 하기까지는 말 못할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위기가 오히려 재도약의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농장 사업을 시작한 지 채 1년도 안된 89년 말 미국 텍사스에 이상 냉해가 와서 알로에 농사를 망친 적이 있습니다. 안되겠다 싶어서 서둘러 멕시코에 가서 원료를 선매했습니다. 경쟁사들은 크리스마스를 지내고 뒤늦게 오는 바람에 알로에를 구하지 못했습니다. 그 해는 남양알로에만 원료를 공급할 수 있게 돼 각국 제조사에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됐고, 그 덕에 남양알로에는 5년 만에 원료 메이저로 부상하게 됐습니다."
'해외 영농과 천연물의 과학화'가 전공이라는 이 사장은 "2005년까지 알로에, 인삼을 비롯한 전세계 3만여 종의 약용식물에 대한 심층 연구를 마쳐 천연식물 분야의 최고 회사로 키워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송영웅기자 herosong@hk.co.kr
● 이병훈 사장은 누구
▲ 1962년, 서울 출생
▲ 경복고, 연세대 영문학과, 미국 위스콘신대 학·석사
▲ 1988년 미국 알로콥 설립
▲ 1995년 미국 유니젠 생명과학 설립
▲ 1996년 (주)남양알로에 대표이사
▲ 2000년 국제알로에기준심의협회 회장,(주)남양 대표이사 미국 유니베라 홀딩스 대표이사
▲ 2001년 국제알로에기준심의협회 '명예의 전당' 첫 헌정
▲ 2002년 세계경제포럼 '아시아 차세대 리더' 선정
▲ 장정림(37)씨와 1남2녀
나의 취미
어릴 때부터 나는 강아지를 무척 좋아했다. 항상 집에는 강아지 몇 마리가 있었다. 마당에서 같이 뒹굴고 입맞추는 것도 성에 차질 않아 밤이 되면 같이 자고 싶어 성화를 부리던 기억이 새롭다.
초등학교 3∼4학년 쯤에는 아버지가 쓰시다 고물이 돼버린 카메라 한 대를 '불하' 받았다. 그 사진기는 밤에 같이 자고 싶을 정도로 사랑했던 우리집 강아지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담아 내는 신기한 요술 상자였다. 렌즈를 통해 강아지들의 수 많은 모습과 표정, 그리고 내 마음의 느낌을 필름에 담는 것은 더 없이 매력적인 일이었다. 사진기는 그 후 내 생활의 일부분이 되었다.
강아지 촬영을 하다 보니 욕심이 생겼다. 보고 느낀 대로 사진 찍기란 기술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어서 불만도 생겼고, 더 잘 찍어 보고자 하는 욕심이 생긴 건 당연한 일이었다. 내 사진 기술은 집안 어른들과 친분이 있으셨던 모일간지 사진기자를 만나면서 일취월장 하게 되었다. 워낙 마음이 곱고 아이들을 좋아 하셨던 당대의 명기자가 사진에 미친 집요한 꼬마를 만났으니 당연 사제의 정이 싹튼 것 아닌가 싶다.
나의 사진 취미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사진은 내가 살아오면서 사랑했던 사람들과 사물들과 함께 느꼈던 기쁨과 슬픔, 희망과 좌절을 담아내 온 큰 그릇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자연에 탐닉했던 나는 산과 들, 바다와 강을 보면서 느꼈던 아름다움과 맑고 순수함을 찍었다. 대학시절에는 암울했던 군사 독재 시대의 군상들을 필름에 담았다. 사업을 시작하면서는 자연히 알로에의 다양한 모습과 일과 열정의 현장이 내 사진의 주제가 되었다.
이제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되다 보니 요즘 찍는 대부분의 사진들은 아이들이 대상이다. 세 아이들의 모습을 사진기에 담는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행복이다. 그리고 그런 내 모습은 강아지 촬영에 열중하던 어린 시절에 투영되어 세월과 함께 서서히 변해가는 자신을 느끼게 해준다.
● 남양알로에 어떤 회사
남양알로에는 해외 40여 개국 1,300개 기업에 알로에 원료를 공급하는 세계 최대의 알로에 원료 공급회사다. 연간 1억 달러 내외인 알로에 원료 시장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2위 업체와 매출액에서 3배 정도 차이가 날 정도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연간 매출은 국내 법인 1,200억원, 해외 법인 800억원 등 총 2,000억원. 국내 법인은 알로에 완제품을 제조해 방문판매를 통해 소비자에게 공급한다. 전국에 350개의 대리점이 있으며, 1만5,000명의 설계사가 판촉 활동을 하고 있다. 국내 알로에 시장의 40%를 점유하고 있는 선두 업체다.
현재 멕시코에 세계 최대인 140만평 규모의 탐피코 농장을 비롯해 미국 텍사스 할링젠 농장(80만평), 러시아 크라스키노 농장(650만평) 등 전세계에 알로에 농장을 보유하고 있다. 총 재배면적은 여의도의 3.7배인 940만평에 이른다. 러시아 농장이 본격 가동 되면 원료 공급률은 50%로 높아질 전망이다.
최근 남양알로에는 알로에의 연구에서 생산, 개발, 판매 등 전과정을 일괄적으로 관장하는 '에코넷(ECONET)' 시스템을 구축, 천연물 산업 분야에서 세계 1위 기업으로의 도약에 나섰다. 또 신약 개발에도 뛰어 들어 알로에를 건강보조식품에서 생약품 영역으로 확대 시키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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