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배(40)씨는 1989년 대학을 졸업한 뒤 맥도널드의 영업직원으로 첫 출발을 했다. 프랜차이즈 업계의 선두주자에서 근무하다보니 그 적성을 살려서 미래유통정보연구소라는 민간컨설팅회사로 옮겨 9년을 일했고 그 후에는 중소기업청 산하 소상공인센터에서 4년간 5,000만∼7,000만원 정도의 자본금으로 창업하려는 이들에게 창업을 컨설팅했다. 그의 현직은 사회연대은행의 사업지원팀장이다. 그는 이곳에서 가난한 이들에게 사업수완을 갖도록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다. 경기 안산시에 있는 분식집 '배꼽시계'가 그의 최근 컨설팅업체. 가난한 이들이 공동으로 창업, 떡볶이와 라면 김밥을 주로 팔던 이곳에 그는 "주변에 중고등학교가 있으니 돈가스를 메뉴로 추가하라"는 제안을 하고 이곳에 음식을 대줄 자활업체에게 돈가스 만드는 방법을 강사를 섭외하여 가르쳐주고 있다. 사회연대은행의 이종환(42) 사후관리팀장. 빈곤층의 자립을 돕는 자활훈련기관에서 일했던 그 역시 한씨와 같은 일을 한다. 그는 경기 구리의 한지공예전문점인 '구리한지랑'의 판매가 저조하자 이곳을 우체국 판매 쇼핑몰인 이포스트에 입점시키는 방안을 고심중이다. 애견옷을 전문으로 만드는 '실과 바늘'에는 디자이너 교육을 섭외할 생각도 했었다. "이 분야는 아직 국내 전문 디자이너가 없다고 하여 일본쪽 경향을 벤치마킹하도록 일러드렸다." 이들은 바로 사회연대은행이 내세우는 소규모 창업교육 전문가이다.
사회연대은행은 가난한 이들이 만든 창업공동체에 무보증 무담보로 돈을 꿔주는 사회복지단체. 올 3월에 정식출범한 후 5개 업체에 모두 1억2,000만원의 돈을 대출해줬다. 업체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연리 4%에 6개월 거치 3년 상환으로 대출조건도 좋은 편이다. 빈곤층은 보증과 담보가 없어 금융기관에서 돈을 꿀 수 없는 현실을 감안하면 이 같은 대출전문 사회복지단체는 빈부격차가 점차로 커지고 있는 한국에서 꼭 필요한 존재. 그러나 사회연대은행의 존립 이유는 돈 자체를 꿔주는 데만 있지 않다. 돈을 꾼다고 해도 사업수완이 없으면 자립은 강건너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기술을 가르쳐서 빈곤층의 자활을 돕는 자활후견기관이 2000년초에 20개에서 2003년에는 260개로 늘어났지만 자활하는 빈곤층은 그 수를 꼽을 정도이다. 전문기술도 없고 주로 일용직에 종사하던 가난한 사람들이 갑자기 기술을 배운다고 곧바로 사업을 벌일 수는 없다. 그래서 가난한 이들에게 대출해주는 것과 동시에 이들이 사업 능력을 갖추도록 전문가가 달라붙어서 지도하는 일을 병행하고 있다"고 사회연대은행의 이종수(49) 운영위원장은 말한다.
사회연대은행이 등장하게 된 배경에는 어김없이 IMF가 있다. 실직자가 늘어나고 가난한 사람들은 더 가난한 상황으로 내몰리는 것을 보면서 1998년 성공회 포천 나눔의 집 김홍일 신부가 전문가들을 모아놓고 이에 대한 대책을 찾아보자고 제안했다. 이때 모인 이들이 이종수 위원장과 김수현(청와대 빈부격차 차별시정팀장) 김신양(파리10대학 박사과정) 노대명(한국보건사회연구원 자활지원연구팀장)씨였다. 이종수 위원장은 민청학련 사건의 주모자로 투옥생활을 한 운동권 출신으로 체이스맨해튼은행에서 호주은행 한국법인을 세우거나 인도네시아에 합작은행을 세우는데 관여했던 금융전문가. 김수현씨는 서울시 시정개발연구원의 도시빈민문제 전문가였고 김신양씨 역시 파리10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연구하고 있었다.
역시 파리2대에서 도시빈곤을 전공하고 당시 인천발전연구원의 연구위원으로 있던 노대명(40)씨는 이 같은 논의 끝에 '도시와 빈곤'이라는 잡지에 사회연대은행을 제시했다. 사회연대은행은 빈곤층에 금융지원을 해주어 그들의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유럽형 금융지원체계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당시 국민의 정부에 있던 '삶의 질 향상 기획단'은 이를 정책화하는 방안을 제시해달라고 요청했으나 곧 흐지부지되었다.
보통이면 그냥 손털고 일어났을 일이지만 다섯 사람은 그렇지 않았다. "정부에 기댈 것이 아니라 민간차원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자"며 1년동안 매주 한번씩 아침마다 만나서 '제3섹터 개발을 통한 실업자 구제안'을 구체적으로 논의했다. 제3섹터란 정부에서는 손을 놓았지만 공공성이 있어서 공공기금을 활용하여 민간에게 맡길 수 있는 영역. 이를 구직자 실직자들에게 일자리로 개발하고 복지예산을 들여 이들을 지원하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었다. 음식물 쓰레기 처리나 폐컴퓨터 재활용, 간벌사업, 간병사업 등이 이 같은 영역으로 꼽혔다. "돈받고 하는 연구용역이면 오히려 그렇게 오래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노씨는 당시를 전한다. 논의 결과 다섯 사람은 가난한 사람을 위한 소액대출기관을 만들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실업률이 높아지다보니 임금근로자로서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은 한계가 있고, 결국 자영업 창업을 돕는 것이 대안인데 중산층에게는 퇴직금이 있었지만 저소득층에는 창업기금조차 없다는 데서 착안했다. 이미 기존에 있던 생업자금융자제도도 보증인을 필요로 하며 2001년에 400억을 융자해줬으나 성공률은 불과 17.7%였다는 점에서 무보증 무담보 대출에 경영훈련을 해주는 지원기구를 생각해냈다. 다섯 사람은 지금도 사회연대은행의 운영위원으로 동참, 전문가로서 조언을 계속하고 있다.
사회연대은행이 공식 출범할 수 있었던 것은 삼성복지재단이 사회복지기금에 출연한 10억원을 빈곤층 대출에 활용하도록 지정기탁을 해줬기 때문이다. 아직은 거기서 못 벗어나고 있는 것이 사회연대은행의 한계이기도 하다. SK텔레콤이 빈곤 장애인 창업기금으로 역시 수억대의 돈을 지정기탁하는 방안을 현재 협의중이다.
지정기탁금은 오로지 지정한 목적에만 쓰이므로 사회연대은행이 가장 어려움을 겪는 것은 운영자금. 대부분의 사회복지기관이 다 그러하듯 사무국 직원 7명은 박봉을 감수하고 있다. 삼성에 근무하다가 사회복지가 좋아 전공인 신문방송학에서 다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이곳에 초기 멤버로 동참한 임은의(34) 자원개발실장은 "일이 즐거울 뿐"이라고 말한다. 이곳의 운영자금은 자원봉사자들의 후원금으로 하고 있으나 아직은 그 액수가 적어 직원들이 빈곤층 연구용역을 맡아 임금을 충당하는 경우도 있다.
사회연대은행의 지원을 받으려면 반드시 공동체 단위로 창업을 해야 한다. 가난하고 자활의지가 있고 사업아이템이 분명하고 사회연대은행의 지원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야 지원이 된다. 대출 한도는 1인당 최대 1,000만원. 이종수 위원장은 "그러나 한도액까지 대출을 신청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금리가 낮은 대출이면 무조건 많이 받으려는게 시속인데 필요한만큼만 달라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들의 정직함과 순박함에 감동했다"고 말한다. 이 위원장은 "아직 상환을 시작하지 않아 딱 부러지게 말할 수는 없지만 시중은행 대출자 손실이 40%인 반면 세계적인 빈곤층 소액대출기관인 그라민 은행의 대출자 손실은 2%"라며 "우리 은행도 대출금이 다 돌아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아직은 이 곳이 덜 알려져서인지 경쟁률은 높지 않다. 1차 때도 14개 업체 중에서 5개 업체를 선정했다. 선정된 업체 대부분이 이미 자활훈련기관을 통해 기술을 전수받고 창업한 뒤 운영자금이 모자라거나 새로운 기계대금이 부족해서 자금을 요청했다.
사회연대은행이 안타까워하는 것도 바로 이 부분. 자활의식 이전에 자신감이 없어서인지 사업하겠다고 나서는 빈곤층 자체가 적다. 최근에는 이 위원장이 충북 옥천에 갔다가 삼백초를 키우는 농가가 약초를 도매상에 파는 데서 그치는 것을 보고 안타까워 좀더 적극적으로 상품 개발을 하고 마케팅을 해보자고 제안을 했지만 연락이 없다고 전한다. 이 때문에 사후관리에는 자신감을 북돋는 과정을 꼭 넣고 있다.
한진배 팀장은 "이들만을 위한 경영수지분석 프로그램을 만들어 앞으로는 다달이 찾아가서 월 목표치를 정해 거기에 맞춰 경영을 분석하는 감각을 일깨워 줄 것"이라며 "(창업에) 선수라면 이 사람들을 성공시키는 게 진짜 선수라는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화숙 편집위원 hssuh@hk.co.kr
국내 첫 소액대출기관은 "신나는 조합"
가난한 이들을 위한 소액대출기관으로는 파키스탄에서 시작된 그라민은행과 미국의 아시온, 국내의 신나는 조합이 있다. 신나는 조합은 그라민은행의 지원을 받아 그 방식대로 운용되는 국내 최초(2000년 창립)의 소액대출기관. 1인당 대출액이 100만원인 점이 사회연대은행과 다르다. 또 생업자금대출제도도 가난한 이들이 활용할 수 있는 소액대출제도. 네 군데를 비교해보았다.(출전 이종수 위원장 연세대 행정대학원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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