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최도술씨 비리사건을 계기로 재신임 카드를 던진 데 대해 정치권에서는 "무책임한 발언"이라는 지적부터 "총선전략"또는 "음모, 함정"이라는 비난까지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청와대는 "이것이 노무현의 스타일"이라면서 '순수성'을 강변하고 있다. 실제로 물러날 각오가 있다는 말이다.그러나 측근 참모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노 대통령은 오래 전부터 재신임 문제를 구상해왔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어느 정도 준비된 청사진이 있다는 얘기다. 다만 최씨 사건과 지지율 추락 등으로 카드를 꺼내는 시기가 몇 달 앞당겨진 것으로 보인다.
한 386 핵심참모는 14일 참여정부 출범초기부터 노 대통령 주변에서 재신임과 관련한 공감대가 있었음을 내비쳤다. 그는 "국민이 우리를 보고 '아마추어', '불안하다'고 했을 때 우리는 '1년 후에 평가해달라'고 말했다"며 "우리도 잘 하는지 잘못하는지 자신감이 없다면 국민에게 한번 물어봐야 한다는 생각이었다"고 밝혔다.
김만수 전 보도지원비서관도 "총선 출마를 위해 청와대를 나올 때 노 대통령은 선거는 구도가 중요하고 '낡은 정치 대 새 정치'로 가야 지역구도를 깰 수 있다는 말을 했다"며 "정기국회가 끝나는 12월쯤 뭐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재신임 카드는 총선을 이기기 위한 책략 수준은 아니다"며 "그러나 어차피 정치개혁은 선거를 매개로 해야 논의가 이어지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재신임은 야권을 비롯한 반대세력의 공세를 돌파하기 위해 준비해온 수단이기도 하다. 한 참모는 "어차피 최씨 수사가 진행되면 야당과 언론에서 공격하면서 하야 요구가 나왔을 것"이라고 말해, 먼저 선수를 친 측면이 있음을 인정했다. 다른 참모는 "노 대통령은 자신이 맡은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면 그만둬야 한다는 것이 기본입장"이라고 강조했다.
10일 기자회견에서 재신임 방법을 공론에 부치자고 했다가 한나라당이 "국민투표로 하자"고 나서자 곧바로 이를 수용한 것도 노 대통령이 상당히 구체적인 복안을 갖고 있음을 시사한다. 청와대측은 "처음부터 국민투표로 하자고 말 하고 싶었는데 조심스러워 제안을 못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로 미뤄볼 때 노 대통령은 야당측이 반대하더라도 국민투표를 관철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투표는 기존 지지세력의 결집 뿐 아니라, 지지기반의 외연을 확대할 수 있는 방안이기 때문이다. 386참모들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국민투표를 저지하려 하더라도 "실현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관계자는 "노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걸고 국민심판을 받겠다는 데 이를 저지할 명분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다른 핵심 관계자는 "앞으로 재신임이라는 화두로 사회 곳곳에서 대토론이 벌어질 것"이라며 "그러면 결국 개혁 정치세력이 결집하는 기류가 형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노 대통령은 국민투표를 실현시키기 위한 제2, 제3의 카드도 구상중임을 짐작케 한다.
/고주희기자 orwel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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