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필요 없으니 그냥 이대로 살게 해주소." 조봉선(72) 할아버지는 돋보기너머 비치는 눈물부터 훔쳤다. "30년 넘게 흙만 파먹었는데 설사 보상을 받아 집 한 칸 얻는다 해도 이 나이에 경비를 설까, 잡부를 할까? 그냥 죽으란 말이여!" 드넓게 펼쳐진 경기 김포시 양촌면 김포평야. 양팔 걷어 부치고 나서도 모자랄 가을걷이는 뒷전인 채 촌로들은 양곡리 중앙병원 뒷편 '김포신도시반대 양촌투쟁위' 컨테이너박스에 모여 신세 한탄이다.건교부가 5월 경기 김포시 양촌면·운양동·장기동 일대 480만평을 신도시 대상지로 발표하자 이 곳에 사는 주민 1만 여 명은 즉각 투쟁위를 꾸렸다.
6월부터 시작된 주민들의 항의집회는 국회와 주택공사, 토지공사, 국방부 등을 가리지 않고 이어졌다.
수십 년 동안 개발열풍에서 제외된 소외감도 털어버리고, 신도시 건설이 가져올 달콤한 개발 이익도 따져볼 법 한데 주민들은 "살 길이 막막하다"며 숫제 울상이다.
턱없이 낮게 책정될 보상에 대한 두려움과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리라는 불안이 주민들의 목을 옥죄고 있기 때문.
양곡2리 김재임(68) 할머니의 솔직한 대답. "신도시가 가뭄에 단비인줄 알았는데 날벼락이야. 농협 빚도 허리가 휘는데 쥐꼬리만한 보상에 융자까지 내 아파트를 사면 다달이 관리비며 전기세는 무슨 수로 메워."
투쟁위 정광영 위원장은 "양촌면 1,300여 세대 중 90% 이상이 임차농이라 토지보상은 현지 주민에게 의미가 없고, 70% 이상이 60세 이상이라 생계수단을 잃은 노인들이 도시 사람에게 밀려 결국 공동체는 깨지고 베드타운으로 전락할게 뻔하다"고 주장했다.
토양유실방지, 대기 및 수질 정화, 식량자원보고 등 김포평야의 가치를 들어 반대 논리를 펴는 주민도 있었다.
토박이 이범용(63)씨는 "여름내 물을 담아두는 김포들녘 논둑이 소양강댐보다 홍수조절에 효자 노릇 하는데 그거 콘크리트로 발라봐. 매년 서울이 침수돼 난리일 텐데, 그걸 몰라" 하고 혀를 찼다.
환경단체들 역시 재두루미 흑두루미 등 희귀 철새보호를 내세워 주민들과 함께 김포신도시 건설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다. 10월 김포평야는 신도시 건설에 항의라도 하듯 겨울철새 큰 기러기와 흰뺨검둥오리 떼가 하늘과 들판, 강변을 까맣게 덮어 장관을 연출했다.
서해와 한강의 짠물 민물이 뒤섞이고 산과 들이 있는 김포 일대는 황복 참게와 볍씨 등 먹이가 많아 철새의 서식지 및 번식지로는 최적의 장소.
10년째 김포 일대 조류 개체조사를 해온 한국조류보호협회 윤순영(51) 김포지부장은 "수리부엉이(324호) 등 10여종의 텃새 천연기념물뿐 아니라 재두루미(203호) 흑두루미(228호) 등 세계적인 보호 철새들의 주요 경유지인 김포일대에 고층 아파트단지와 도로가 들어서면 보호구역을 따로 조성하더라도 새들의 하늘 길을 막아 생태가 파괴될 게 뻔한데도 정부는 제대로 된 실태조사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환경정의시민연대 정책기획위원장 조명래(단국대 사회학부) 교수는 "올해 초 강남 재건축 지역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촉발된 서울 집값 안정책으로 제시된 김포 신도시는 5년 후나 주택을 공급해 현재 집값을 잠재울 수 없다"며 "서울 부근에 유일하게 평야문화를 간직한 김포는 주민 참여형 생태마을로 꾸며야 한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건교부는 서민주거 안정과 수도권 난개발 방지를 위해 2008년까지 주택 7만호(인구 21만 명)를 짓는 김포신도시 건설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건교부는 한강변 농지 등 18만 여 평을 이 달 추가 편입한데 이어 다음달 말 김포시 일대를 신도시개발예정지구로 지정하고 환경영향평가 등을 한 뒤 내년 말까지 개발계획을 수립해 2005년 토지보상, 2006년 주택분양을 실시한다는 방침이다.
건교부 관계자는 "신도시 내엔 철새도래지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낟알 등을 먹는 철새의 이동 경로를 파악해 자연형 하천, 농업생태촌 조성 등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포=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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