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포스트시즌으로 떠들썩한 이맘때면 그 잔치에 참여하지 못한 다른 한편에서는 감독교체가 연례행사로 벌어진다. 경영진에서 저조한 성적에 대해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기로 했다면 첫째 표적이 바로 감독이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 4개 팀에서 감독을 맡았던 레오 듀로처 감독은 "야구감독은 세상에서 가장 비난 받기 좋은 직업이다. 성적이 나쁘면 당장 잘리고 좋더라도 잘리는 날이 연장될 뿐이다"라는 말로 감독의 숙명론을 거론한 적이 있다.냉정한 프로의 세계에서 약체 팀을 맡은 감독의 목은 언제 떨어질지 모른다. 감독계약은 설사 잔여기간이 남았더라도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가차없이 파기될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우승을 못했다고 잘리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물론 감독이 스스로 물러나는 경우도 있지만 극히 보기 드물다.
이런 세계에서도 한 팀에서 오래 장수하는 감독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국내 프로야구에서 한 팀을 최장기간 이끌었던 지도자는 1983년부터 2000년까지 무려 18년간 해태타이거즈를 맡았던 김응용 감독이다. 두번째로는 지난 주에 후배이자 제자인 선동열에게 지도자길을 열어주기 위해 물러난 김인식 감독으로 1995년부터 2003년까지 9년간 두산을 지휘했다.
1996년부터 8년째 현대를 맡고 있는 김재박 감독이 세번째 장수감독이다. 해태재임기간 중 김응용 감독은 한국시리즈를 9차례 제패했고 두 김감독이 맡았던 팀도 두 차례 챔피언자리에 올랐다. 김응용 감독에 대해서는 두 말이 필요 없지만 30여명의 역대 프로야구 감독 중 우승을 경험한 감독이 9명뿐이라는 점에서 두 김감독의 성적도 나빴다고 볼 수는 없다. 맡은 팀의 성적이 감독의 장수기간과 무관하지 않음을 잘 보여준다.
최근 야구 팬들은 스포츠면 한 귀퉁이에서 훈훈한 미담 하나를 볼 수 있었다. 선동열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스스로 물러난 김인식 전감독에 관한 것과 그 후배에게 차기 감독을 암시하는 듯한 말과 함께 투수코치로 영입한 김응용 감독에 대한 기사였다. 김인식 전감독의 깨끗한 물러남이 스포츠맨의 미덕이라면 자칫 이미지가 손상될 뻔했던 '국보'를 끌어안은 김응용 감독의 포용력은 지극한 야구사랑으로 비춰진다. 우리사회가 혼돈 그 자체에 빠진 요즘이라 두 노감독의 무욕이 존경스럽다.
/정희윤·(주)케이보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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