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 사이에서 '명품족'으로 불리는 K양(27)은 올들어 백화점 출입을 끊었다. 대신 이월 상품이나 기획 상품을 싸게 파는 도심 외곽의 아울렛 매장을 주로 이용한다. 철이 바뀔 때마다 구입하던 의상도 봄, 가을은 건너 뛰고 여름과 겨울 옷만 구입한다.
자녀가 둘인 주부 J모씨(33)씨는 최근 막내(2) 기저귀를 엠보싱이 있는 고급 제품에서 할인점 자사브랜드(PB) 제품으로 바꿨다. 처녀 때부터 줄곧 사용해온 미백 화장품, 주름제거 화장품도 로션과 영양크림 등으로 대체했다. 그는 "경기침체로 남편이 언제 직장을 그만둘 지 모르는 상황인데 함부로 돈을 쓸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소비자들이 지갑을 꽁꽁 닫고 있다. 과거와는 달리 주부와 봉급 생활자는 물론, 왕성한 소비욕을 과시하던 20대 젊은이와 고소득층까지 소비를 급격히 줄이는 게 특징이다.
전문가들은 최근의 소비 침체가 경기 불황과 가계신용 억제 등 구조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어 장기화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더욱이 내년에도 가계부채 문제가 해소될 가능성이 희박한데다, 부동산시장 안정을 위해 금리를 올릴 가능성마저 있어 민간소비가 언제 회복될 지 기약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소비심리 98년 이후 사상 최저
통계청이 14일 발표한 9월 소비자전망조사 결과 6개월 전과 비교해 현재의 경기, 생활형편 등에 대한 소비자들의 평가지수는 59.9로 1998년 11월 조사 시작 이래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기준점인 100 밑으로 내려갈수록 현재의 생활형편이 6개월 전보다 악화했다고 느끼는 가구 비중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와 비교해 6개월 후의 경기, 생활형편, 소비지출에 대한 기대심리를 보여주는 소비자기대지수도 90.4로 올들어 최저치를 기록했다. 특히 경기 흐름과 비교적 무관하던 외식, 오락, 문화 등의 소비지출 기대지수도 82.3으로 연중 최저치를 기록, 향후 꼭 필요한 생계비 외에는 가계 소비를 억제할 것으로 전망됐다.
소득계층별 소비자기대지수는 100만∼149만원대를 제외하고는 전 계층에서 감소했다. 연령대별로도 20대를 제외하고는 전 연령대에서 부정적 전망을 내놓았다. 6개월 전과 비교해 가계부채가 증가했다고 응답한 가구는 28.7%로 지난 1월(19.2%) 이후 계속 늘고 있다. 통계청 관계자는 "소폭 회복세를 보이던 소비심리가 태풍 매미 등의 영향으로 다시 꺾였다"고 설명했다.
가계버블 해소 상당 기간 걸릴 듯
재정경제부는 최근 소비 부진의 원인을 근로소득 둔화, 사업소득의 감소, 이자수지 축소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진단했다. 재경부 관계자는 "올 2·4분기 수출의 성장기여율은 150.4%, 투자는 23.9%에 달한 반면, 소비는 -44.9%를 기록했다"며 "수출이 소비가 갉아먹은 몫까지 채우는 구조로는 정상적인 성장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 황인성 수석연구원은 "가계부채 급증으로 형성된 버블이 해소되려면 상당 기간이 필요한 만큼, 소비 침체가 구조적으로 장기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내년 민간소비 증가율은 올 하반기(1.4%)보다 다소 높은 2.9%로 예상되지만, 올해 소비가 워낙 부진한데 따른 기술적 반등일 뿐 기조 전환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고재학기자 goindol@hk.co.kr
송영웅기자 hero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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