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을 소용돌이로 몰아넣은 노무현 대통령의 재신임 국민투표 제안은 국민의 의사와 요구를 국가정책결정 과정에 전달해 주는 역할을 하는 정당과 언론, 특히 야당이 다수를 점하고 있는 국회를 우회하여 대통령이 직접 국민과 대면하기 위한 전략이다. 이로써 노 대통령은 정국의 주도권을 잡는데 일단 성공한 듯하다. 한나라당과 보수세력은 국민투표의 적법성 문제나 노 대통령의 저의(底意)를 따지면서 국민투표 제안을 거부하기로 했지만, 수세에 몰린 것이 사실이다.이런 상황에서 국민투표의 적법성 문제나 노 대통령의 저의에 관해 논하기보다는 대통령이 국회를 우회하는 전략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저간의 조건들, 그리고 그것을 바꾸어놓을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 논쟁하는 편이 나을 듯하다.
국민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우리의 국회는 진지한 토론과 민주적 결정보다는 정쟁과 밀실야합이 횡행하는 곳이다. 지금처럼 야당이 다수를 점할 때면 국회는 대통령과 행정부가 하는 일마다 발목을 잡는데 주력한다. 반대로 김영삼 정부 때처럼 여당이 국회의 다수를 차지하면 집권당의 횡포가 대단해진다. 여소야대이든 거여소야든 우리 정치는 항상 극한적인 대립과 정쟁으로 점철되어 왔다. 이것은 노무현 정부의 혼란과 무능이 단지 국회의 여소야대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우리 국회가 생산적인 토론과 협상의 장이 되지 못하고 대립과 정쟁의 장으로 전락한 것은 정책능력이 떨어지는 국회의원이 많았던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정당이나 정치인들이 좁은 범위 내에서 경쟁하도록 만드는 제도와 관행 탓이 더 크다.
그간 우리 정치는 미국의 부당한 요구에 대해서 '노'라고 하기 어렵게 만드는 절대적인 대미의존성, 북한의 입장과 조금이라도 가까운 정책이나 행동은 빨갱이로 몰아넣는 맹목적 반공주의, 여성차별적인 가부장제, 상급자에 대해 무조건적 충성을 강요하는 권위주의 등에 의해 지배되어 왔기 때문에 지극히 좁은 테두리 내에서만 정책 대안이 가능했다. 이러한 제약 속에서 정당이나 정치인이 선거에서 손쉽게 표를 모을 수 있는 전략은 지역개발을 내세우거나 학연이나 지연과 같은 연고에 호소하는 것밖에 없었다. 연고를 기반으로 뭉쳐진 정당 간에 자기지역개발을 위한 경쟁이 중심을 이루다 보니, 우리 정치는 지역갈등과 부패비리로 점철될 수밖에 없었다.
노무현 정부의 탄생과 지난 대선후 각 정당 내 개혁운동은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환멸과 새 정치에 대한 열망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구태의연한 정치인들의 저항은 의외로 강해 개혁은 제대로 추진되지 못했다. 심지어는 새 정치의 '표상'이었던 노무현 정부조차 구태를 완전히 탈각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런 측면에서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에도 우리 정치가 구태나 혼란으로 점철된 데는 정부 특히 노 대통령의 리더십 부족 탓도 적지 않다. 지난 대선 때의 지지세력이 새 정부 출범 후 노 대통령으로부터 대거 이탈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고, 이것이 결국 노 대통령의 국민투표 제안을 가져왔다.
노 대통령의 제안이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것이라면, 이번 국민투표는 단순히 노 대통령의 도덕성만을 묻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그보다는 구태한 정치를 만들어낸 제도와 관행을 완전히 뿌리뽑고 새로운 제도와 규범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확인하는 절차로 활용되어야 한다.
차제에 중대한 실책이나 비리를 저지른 정치인에 대한 국민소환제나, 중요한 국가적 문제에 대한 국민투표제를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해봄 직하다. 선거 때만 국민의 참여를 허용하는 현 제도는 선거가 끝나면 국민의 요구나 목소리를 외면하게 되고, 정치인들이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러도 수수방관할 수밖에 없도록 하기 때문이다.
정 영 태 인하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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