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만대 감독이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을 내놓았을 때, 사람들은 수오 마사유키나 구로사와 기요시 같은 일본 감독들을 언급했다. 그들은 핑크 영화를 찍다가 '영화 작가'라는 이름을 얻은, 이른바 '에로 출신' 감독이다. 이번엔 에로 배우 하소연이 (영화는 아니지만) 지상파인 KBS '드라마시티'에 출연한다. 극중 배역은 에로비디오 여배우 유나니. 그리고 그녀는 지금 대학로에서 '소녀의 성'이란 제목의 연극에 출연하고 있다.사실 하소연 이전에도 몇몇 에로 배우들이 스크린과 브라운관에 진출한 적이 있었다. 과거 진도희는 '젖소부인 바람났네'의 후광을 업고 코미디 프로에 출연했다. '미소녀 자유학원' 시리즈로 유명한 유리는 아침 드라마를 거쳐 '네 발가락'에서 조폭 두목의 애인 역을 맡기도 했다.
'친구'의 트리플 섹스 장면에는 에로 스타 은빛과 조영원이 출연한 바 있다. 은빛은 '철없는 아내와 파란만장한 남편 그리고 태권소녀'에서 교사와 창녀의 1인2역을 하기도 했다. 지금은 활동을 접은 이메일은 '몽정기'의 여관 장면에 오토바이 헬멧을 쓰고 출연했다.
이제는 '원로'라고 부를 만한 정세희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서 국회의원을 복상사시켰다. 에로계의 '또순이'로 불리는 엄다혜는 대학로 연극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이외에 몇몇 남자 배우들은 TV의 재연 드라마에서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하지만 그들, 특히 여배우들은 대부분 에로계라는 음지(?)를 벗어나면 '기능적' 역할을 맡았다. '전직 에로 배우'라는 타이틀은 벗어나기 힘든 굴레인가 보다. 하소연 같은 경우도 과거 시트콤에 작은 조연으로 잠깐 출연한 적이 있었다. 인기나 돈보다는 새로운 연기를 만나기 위한 경험 차원이었던 것 같다.
이때 그녀는 어떠한 편견의 벽에 부딪쳤다. 이미 쟁점이 된 사건이지만 에로 비디오라는 마이너리그에서 지상파라는 메이저리그로 진출하려는 그녀에겐 '에로배우 주제에…'란 시선이 쏟아졌고 프로덕션 측은 출연료마저 지급하지 않으려 했다. (이후에 제대로 챙겨 받았는지 모르겠다.)
이번에 그녀는 또 한 번 시도한다. 지난해 초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하소연은 연극영화과 진학을 준비 중이었고 작은 연못이 아니라 좀더 큰 물에서 놀고 싶다고 말했다. 스무 살 아가씨의 그 말을 듣고 난 사실 반신반의했다. 에로계의 너무 많은 여배우들이 6개월에서 1년을 못 견디고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떠나지 않았고 조금씩 자신의 비전을 키워나가고 있다.
그런 면에서 하소연의 도전은 의미 있다. 과연 에로로 시작했던 여배우가 '에로'라는 수식어를 떼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배우'라는 이름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그녀는 에로 배우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다른 배우들보다 베드신을 조금 더 잘하는 한 명의 배우가 될 것인가. 그녀는 이미 엄청난 노력을 해왔고 연기자가 되고 싶다는 의지만큼은 분명하다. 이제 남은 건, 관객들의 선입관. 단지 '에로 배우'라는 이유만으로 가혹한 평가를 받을 이유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물론 '배우'로서의 부족함은 지적해야겠지만.
/김형석·월간 스크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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