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비난이 없더라도, 지식인이란 죄 많은 존재임에 틀림없다. 사르트르는 저서 '지식인을 위한 변명'에서 그렇게 단언한다. '지식인이란 모든 사람을 위해 자기 모순을 사는 사람이며, 모든 사람을 위해 그 모순을 극복하려는 사람'이라고도 말한다. 지식인은 아무도 그에게 어떤 일을 위임한 적이 없으므로 고독한 존재다.송두율 독일 뮌스터대 교수 사건으로 한 달 가까이 소란스럽다.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지만, 예상보다 파문과 충격이 크다. 국가정보원의 조사결과 그는 북한 노동당에 입당했고, 북으로부터 수만 달러의 여행·학술지원 자금을 받았으며, 정치국 후보위원 김철수로 확인됐다고 한다. 많은 사람이 분노하고, 그를 이해하려던 사람까지 당혹스러워 하고 있다.
사르트르는 '지식인의 가장 직접적 적(敵)은 사이비 지식인'이라고 일침을 놓고 있다. 송 교수의 행적은 지식인의 자기 엄격성과 정직성을 지키지 못한 것으로 비치고 있다. 냉철하고 객관적이기보다, 나약하고 우유부단해 보였다. 37년 만의 귀향으로 인한 현실감각 결핍 때문인지, 기회주의적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었다. 사과표명이 기대됐던 기자회견에서도 자기변명을 앞세움으로써, 많은 이들을 실망시켰다.
북한에 치우쳐 지식인적 삶에 투철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그에 대한 평가를 비난과 치욕으로 바꿔 놓고 있다. 그의 잘못은 명백해 보인다. 그도 냉철한 자세로 지인들의 실망을 헤아려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우리의 남북 자체가 모순의 땅이었고, 현대사가 모순으로 점철돼 왔다. 그는 한국의 많은 지식인들이 독재정권 아래서 침묵하고 있을 때, 용기 있게 독일에서 유신반대와 신군부에 대한 저항의 기치를 들었다. 그 후의 친북 전력 때문에 외로운 민주화 투쟁까지 매몰시키는 것은 공정하다고 보기 어렵다.
송 교수는 1995년 국내에서 발간된 책 '역사는 끝났는가' 에서 자신의 방북 사실을 밝히고 있다. <91년 서울대학으로부터 온 나의 초청이 여러 방해로 무산되자, 북의 사회과학원 초청으로 91년 5월 평양을 방문, 그곳 학자들과도 만나고 강의도 하고 또 김 주석의 접견까지 받았다.> 그는 북한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비교 사회주의 연구를 수반하는 내재적 방법론이 필요하다며, 이론을 기술하고 있다.
조사에 의해 행적이 더 밝혀지겠지만, 그의 학문 내용이나 방북 활동은 대부분 공개된 것들이다. 그는 변호인을 통해 명백히 사죄함으로써, 북보다는 남을 선택하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그에게 동정하는 것조차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색깔론을 자제하자'는 주장에는 재빠른 역(逆)색깔론으로 대응하며 논의를 봉쇄하려는 듯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다.
주목되는 것은 지식인 단체들의 견해다. 참여연대는 송 교수의 행적이 이제야 드러난 점은 유감스럽지만, 사상이념 공세의 빌미로 삼으려는 구시대적 시도를 우려했다. 교수단체들도 자진입국한 송 교수를 국외 추방하는 것은 소명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라며 추방 반대를 밝혔다. 전향을 전제로 한 불(不)추방 방안도 편의적 발상이며, 재판을 통해 처벌 받을 것은 처벌 받게 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종교인들도 국정원과 일부 언론, 정치인들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우리의 성숙함을 믿고 들어온 송 교수를 추방하는 것은 경직성과 미성숙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뮌스터대 교수 13명도 주한 독일대사관에 송 교수에 대한 대사의 배려와 지원을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다.
우리 사회가 현대사의 희생자이기도 한 송 교수를 관용의 정신으로 포용하기를 기대한다. 지식인 단체들의 잇단 성명에서 이성적 사회가 지닌 희망을 느낀다. 한국은 이미 한 개인의 행위로 안위가 흔들릴 정도는 아니라는 주장에서도 든든한 위안을 발견한다.
박 래 부 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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