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의 마지막 반전을 모르고 영화를 본다면 많은 것을 놓칠 수 있다. 사소한 말투 하나, 작은 장치 하나가 관객을 속이는 진정한 사기극의 전조였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라리 속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때로는 속아서 즐거운 일도 있는 법이니까.'글래디에이터' '블랙 호크 다운' 같은 대작 영화를 주로 만들어 온 리들리 스콧의 '매치스틱 맨'(Matchstick Men)은 아주 소소한 것에 집착하는 남자의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40달러짜리 정수기를 490달러에 팔아먹는, 한마디로 사기꾼인 로이(니컬러스 케이지). 그를 사기꾼(Con Man)이라 부르면 싫어한다. 자칭 '사기 예술가'(Con Artist)다. TV 따위는 보지 않고 마일즈 데이비스의 LP를 즐겨 듣고, 카펫에 올라갈 때는 구두를 벗는다. 하지만 그는 행복하지 않다. 작은 행운에 감격해 주머니 털리는 것도 모르는 소시민을 등쳐 먹는 로이의 보이지 않는 양심은 "카펫에 피가 튈까 봐 권총자살도 못하는" 강박증을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치아 교정기를 낀 아이지만 '사기도 직업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는 열네살 딸 안젤라(앨리슨 로만)가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면서 그의 인생 최초의 '소통'이 시작된다. 생면부지의 딸은 아버지의 직업을 존중하고, 심지어 큰 건을 노리는 파트너 프랭크(샘 록웰)의 환치기 사기에 기꺼이 동참한다.
작은 사기극과 밝힐 수 없는 커다란 사기극을 통해 로이가 얻은 것은 가족이다. '죽거나 혹은 죽이거나'의 절대적 갈등 관계를 인간의 생존조건으로 설정해 온 리들리 스콧 감독은 그렇게 살지 않고도 인생이 충분히 꾸려진다는 자기 반성적 메시지를 전한다. 가지런하게 성냥개피가 들어차 틈 하나 없는 성냥갑 같았던 로이의 삶은 최초의 한 알이 불길을 만들어내며 드디어 인간이 된다.
잭 니컬슨보다는 한 수 아래지만, 신경증적 깔끔쟁이 니컬러스 케이지의 연기도 만족스럽다. '오션스 일레븐'의 작가인 테드, 니컬러스 그리핀의 꽉 짜인 시나리오와 노련한 연출 감각은 관객을 상대로 한 최후의 대 사기극을 준비하고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매치스틱 맨'은 사기꾼이라는 뜻의 속어. 17일 개봉.
/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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