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0일은 대한간학회가 정한 제4회 '간의 날.' 한 통신회사 광고카피처럼 최근 몇 년 사이에 한국사회가 정말 많이 변했지만 음주문화는 거의 바뀌지 않았다. '간의 날'이 존재하는 이유다. 술 먹는 방법도 가지가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폭탄주만 해도 정통폭탄주, 수소폭탄주, 중성자탄주, 드라큘라주, 박치기주, 파도타기주, 회오리주, 3층탑주, 비아그라주 등 수십 가지가 넘을 정도다.이런 잘못된 음주문화로 알코올성 간 질환자도 매년 늘고 있다. 경희의료원 소화기내과 이정일 교수는 "1986∼2000년 간 질환 환자를 비교한 결과, 간 질환자 가운데 알코올성 간 질환자의 수와 비율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술 소비가 늘어나는 계절, 간을 다시 한번 생각하자.
술은 간질환의 주범
술을 많이 마시면 간세포가 손상된다는 것은 상식. 알코올로 인해 간이 파괴되는 1차적인 이유는 알코올이 분해되면서 생기는 독성 물질인 '아세트알데히드' 때문. 이 성분은 간 조직을 직접 파괴해 간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한다.
간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면 아세트알데히드가 점점 더 쉽게 간을 공격한다. 또 알코올 및 섭취한 음식물이 대사(代謝)되지 못하고 지방 형태로 간에 축적된다. 알코올성 지방간이 되는 것이다. 보통 지방의 무게가 간 전체 무게의 5% 이상이면 지방간으로 진단한다. 서울대병원 내과 윤정환 교수는 '만성 음주자의 75% 이상에서 알코올성 지방간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간에 피해를 주는 것은 술 종류가 아니라 먹는 알코올 양이다. 우리 몸에 하루에 처리할 수 있는 알코올 양은 80g(65∼70㎏ 성인 기준, 4%의 맥주 2,000㎤, 도수 25%의 소주 320㎤, 40%의 양주 200㎤). 지방간을 비롯한 알코올성 간 질환의 주된 발병 원인은 간이 처리할 수 있는 양보다 더 많은 알코올을 마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이 마시는 알코올 총량을 잘 조절하는 게 간을 지키는 지름길이다.
술을 과다하게 마시면 지방간뿐만 아니라 간염, 간경변증 등도 생기게 된다. 알코올성 간 질환은 당분간 금주를 하면 호전되지만 알코올성이 아닌 다른 간 질환과 구별이 쉽지 않은데다 뚜렷한 증상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삼성서울병원 소화기내과 이준혁 교수는 "술로 인해 생기는 알코올성 지방간 환자 가운데 10∼30%는 알코올성 간염을, 8∼20%는 알코올성 간 경변증까지 악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알코올성 간염이라면 건강한 간으로 회복할 수도 있지만 간경변증은 간암으로 악화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간경변증 환자는 1년에 4회 정도는 간암 검사를 받는 것이 필수다. 알코올성 간경변증은 간염 바이러스로 인한 간경변증 보다 경과가 나빠 서양에서는 말기 간 질환으로 사망하는 사람의 50%가 알코올성 간경변증 때문인 것으로 조사됐다.
간의 신호 눈치채야
지방간이면서도 계속 술을 마시는 사람에게 식욕부진, 체중 감소, 구역질 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면 이미 간경변증일 가능성이 높다. 알코올성 간염이나 간경변증 환자에서는 복수가 차거나 비장이 커지고, 상체에 붉은 반점이 생기기도 한다. 알코올을 많이 마시게 되면 오히려 영양 결핍과 체내 호르몬의 변화로 나타나 유방이 커지는 여성형 유방증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지방간은 뚜렷한 증후가 없기 때문에 기회가 닿는 대로 간 효소수치 검사를 받고, 술을 절제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세란병원 내과 송호진 과장은 "간혹 우측 갈비뼈 밑이 묵직하다거나 전에 없이 술을 마신 뒤 피로가 심하다면 한번쯤 지방간을 의심해 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알코올성 간 질환 예방에는 술을 마시지 않는 게 최선책이지만 어쩔 수 없이 술을 마시더라도 요령있게 마셔야 한다. 과거에는 폭음하면 지방간이 된다는 설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소량이라도 꾸준히 음주하는 것이 더 치명적이라는 일반적인 학설이다. 특히 당뇨병 등 대사성 질환자는 매일 소주 1잔 또는 맥주 1,000㏄를 며칠만 마셔도 지방간이 생길 수 있다.
국민건강지침에 정해놓은 '덜 위험한 음주량'은 막걸리 2홉(360㏄), 소주 2잔(100㏄), 맥주 3컵(600㏄), 포도주 2잔(240㏄), 양주 2잔(60㏄) 정도. 하루에 간이 해독할 수 있는 수치를 약간 밑돌지만, 이 이상은 '과음'에 해당되며, 지방간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간을 기름지게 하지 않는 현명한 방법은 최소한 2∼3일에 한번 휴간일(休肝日)을 갖는 것이다. 또한 안주를 선택할 때 단 음식과 기름기가 많은 음식은 피하고 간세포 재생을 돕는 단백질을 충분히 섭취하도록 한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 간에 좋거나 나쁜 음식
잘못된 식습관은 간의 피로를 가중시킨다.
기름진 안주, 설탕 음식, 흰 쌀, 흰 밀가루 위주의 식생활은 노폐물을 많이 만들어 간을 피로하게 하고 지방간을 유발한다. 또 인스턴트 및 가공식품에 들어가는 첨가제나 과일과 야채에 묻어 있는 잔류 농약 등도 간을 과로하게 하는 원인. 피로회복을 위해 많이 먹는 간장약도 간에 부담을 줄 수 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음식 섭취량. 간세포 재생과 효소 합성을 촉진시키기 위해 단백질 공급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과잉 섭취한 단백질은 간에서 대사(代謝)되기 때문에 간의 피로를 증가시킨다. 미처 대사되지 않은 단백질의 중간 대사물인 암모니아가 간세포에 부담을 주기 때문이다.
강남베스트클리닉 이승남 원장은 "간의 건강을 고려한다면 담백하고 지방질이 적은 음식을 섭취하는 것이 좋다"며 "비타민, 미네랄, 엽록소, 효소 등은 간세포를 재생시키고 신진대사를 촉진해 간 건강에 도움을 준다"고 조언했다.
양배추, 샐러리, 파슬리 등에 들어 있는 각종 비타민은 간 기능을 활성화시키는데 사과나 레몬, 꿀 등을 믹서에 함께 넣고 갈아서 마시면 좋다. 대합탕이나 조개국은 술안주와 해장음식으로도 각광을 받는데 이는 조개류에 많이 함유돼 있는 타우린 덕분. 타우린은 간의 피로를 풀어주고 해독능력을 북돋아주는데 모시조개, 바지락, 대합 등의 조개류와 새우, 낙지에 풍부하다.
또한 건강물질로 알려진 키토산을 섭취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키토산은 세포에 필수적인 아미노당을 공급해주며 지친 간이나 해독기능이 상실한 간 기능을 회복시킨다.
한편 한방에서는 당귀, 용담초, 결명자, 차전자(질경이), 산수유 등의 한약재를 차로 끓여 복용할 것을 권한다. 산수유는 간을 따뜻하게 해주어 기능을 회복시키고, 용담차나 결명자는 간에 몰린 열을 내려주고 기능을 북돋아 준다.
/권대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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