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년 10월13일 스위스의 법률가 겸 철학자 카를 힐티가 76세로 작고했다. 힐티는 베를린 대학에서 헌법과 국제법을 가르치고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의 스위스 위원으로 활동한 법률가이지만, 그의 국제적 명성은 '행복론'과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 같은 에세이를 통해 확립됐다.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는 제1부가 1901년에 나오고 제2부는 저자가 작고한 지 10년 만인 1919년에 유고로 출간됐는데, 한국에서도 여러 출판사에서 중복 간행돼 우리 독자들에게 익숙하다.힐티는 이 책의 서문에서 불면의 원인과 그에 대한 대책을 설명한 뒤 본문에서는 1년 365일 동안 그 날 그 날의 불면에 맞서 사색할 거리들을 서술하고 있다. 불면은 모든 사람들에게 고통스럽다. 그러나 잠을 이룰 수 없는 이 밤들은 나날의 생활을 되돌아보고 바람직한 삶의 길을 모색하는 데 선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하느님의 축복일 수도 있다는 것이 힐티의 생각이었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의 생각을 개진하는 것 외에 독자들이 읽어야 할 성서의 장절을 지시함으로써 성서 읽기를 생활화하는 기독교적 삶을 추천하기도 했다. 힐티 사상의 요체는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삼은 사회개량주의라 할 만했다.
기독교 신자들이 흔히 인용하는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의 한 대목: "위대한 사상은 크나큰 고통으로 깊이 파헤쳐진 마음의 바닥에서만 자라난다. 이런 고통을 모르는 사람의 마음에는 천박한 범용성만 남는다. 디딤돌에 올라가서 아무리 발돋움을 해보아야 소용 없다. 부득이한 형편이 아니라면 어느 누가 수확 많은 그러나 동시에 공포스러운 이 길에 스스로 발을 들여놓을 용기를 낼 수 있겠는가? 또 신의 인도가 없다면 어느 누가 아주 좁고 때로는 깊은 심연의 이 길을 지나갈 수 있을 것인가?"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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