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정국'을 방불케 할 '국민투표 정국'이 시작됐다.노무현 대통령이 11일 자신의 재신임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수용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고 원내 1당인 한나라당도 "이른 시일 내에 국민투표를 하자"고 요구하고 있어, 국민투표는 대통령도, 각 정당도 모두 피할 수 없는 정치적 관문(關門)이 돼가고 있다.
'국민투표 정국'은 극심한 정치·사회적 갈등과 대립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정책적 사안이 아니라 대통령직이 걸려있으니 당연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또한 국민투표법이 정한 '국민투표 운동'도 선거운동의 경우와 유사해 이를 증폭시킬 것으로 보인다. 국민투표를 위한 찬성 또는 반대 운동을 18일간 할 수 있고 방송대담과 연설, 정당연설회 등이 허용된다. 이번 국민투표는 사실상 대통령 선거를 다시 한번 치르는 것과 같을 수 있다.
때문에 청와대와 통합신당, 그리고 한나라당 등은 사활을 건 홍보전에 나설 것이고 이 과정에서 지난 대선을 기점으로 심화한 정파와 지역, 세대 및 이념, 계층 갈등의 재현 또는 확대 재생산이 불가피하다. 게다가 대선과는 달리 국민투표에서는 국민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담은 인쇄물을 제작해 배포할 수 있어 각종 시민단체도 '국민투표 운동'에 뛰어들 수 있는 길이 제도적으로 보장돼 있다. 자칫 대선을 능가하는 혼란상황이 닥칠 수 있다.
이와 함께 각 정치세력의 행위도 국민투표에 맞춰질 수밖에 없어 상대를 흠집내고 압도하기 위한 공방이 당장 격화할 것이다. 따라서 정기국회의 새해 예산안을 비롯해 이라크 파병안, 한·칠레 FTA 비준 등 현안처리에 차질이 빚어질 수도 있다.
현행법상 정책에 관한 국민투표안은 대통령이 마련할 수 있는데 이를 둘러싸고 청와대와 야당의 충돌을 점치는 이도 많다. 무엇을, 어떤 형식으로 묻느냐는 투표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 일각에는 청와대와 야당이 오히려 정쟁중단과 정치개혁 등을 통한 '잘 보이기 경쟁'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있지만 현실성이 낮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유성식기자 ssyo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