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멜리 노통 지음·김남주 옮김 문학세계사 발행·7,000원
아멜리가 죽었다! 2002년 발표한 '로베르 인명사전'에서 아멜리 노통(36·사진)은 이렇게 선언했다. '나를 죽인 자의 일생에 관한 책'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소설은 남편을 쏴 죽인 열아홉 살 엄마가 아이에게 플렉트뤼드라는 별난 이름을 지어주고 자살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모에게서 자라난 여자아이는 이모가 이루지 못한 발레리나의 꿈을 품고 무용학교에 입학한다. 몸매를 관리하느라 지독한 영양결핍에 시달리다 다리뼈가 부러졌다. 영원히 춤을 추지 못한다는 판정도 악몽인데, 이모는 매정하게 자신을 내치고 숨겨왔던 출생의 비밀마저 폭로한다. 엄마처럼 열아홉 살에 낯선 남자의 아이를 낳고 자살하려다, 첫사랑을 만나 죽음을 연기했다. 우연히 알게 된 작가 '아멜리 노통'에게 자신의 '백과사전적 범주'의 고통(소설 제목의 '로베르'는 사전 이름이다)을 들려주기로 했다. 아멜리 노통은 실명으로 등장한 작가 자신이다. 플렉트뤼드의 얘기를 듣고 난 아멜리가 여자를 부추긴다. "네겐 다른 사람을 죽이고 싶다는 욕구가 필연적으로 있는 게 분명해!" 그 말에 여자는 권총으로 아멜리를 쏜다.
어머니처럼 남편을 죽이는 대신, 그 이야기를 만든 사람을 죽였다. 소설은 '시체를 앞에 놓고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는 문장으로 끝난다. 더 쓰여져야 할 이야기가 작가의 죽음으로 계속될 수 없게 됐다. 왜 작가 자신을 죽였는가에 대한 답은 살인자의 입에서 나온다. "아멜리가 신통찮은 작품을 쓰는 걸 막을 수 있는 길은 그것 뿐이었어!" 노통은 소설 쓰기에서 한 장벽을 느꼈던 것 같다. 더 이상 매끄럽게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됐을 때 그는 스스로를 죽이고 이야기를 중단시켜 버리는 당혹스러운 발상을 해냈다. 절필을 선언한 것처럼 보였던 것이 1년 만에 소설을 발표, 독자를 안도하게 하는가 싶더니 이내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최근작 '반그리스도'도 곧 국내에 번역 출간될 참이다.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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