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병 투쟁의 대명사로 산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킨 원진레이온. 이 회사 노동자 50여명은 이황화탄소 중독으로 목숨을 잃었고 현재도 900여명이 산재와 그 후유증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지난달 개원한 서울 녹색병원(서울 중랑구 면목동)은 이 같은 원진레이온 산재근로자들의 피땀을 딛고 서있다. 원진레이온 직업병 노동자들이 받아낸 보상금과 공장터 매각대금 등으로 설립된 원진직업병관리재단이 240여억원을 들여 세운 병원이다.
원진레이온 환자들의 보상금으로는 이미 1999년 경기 구리에 원진녹색병원이 설립돼있으나 48병상 규모에 진료과목도 제한돼 전문적 치료는 불가능한 상태. 때문에 첨단시설을 갖춘 종합병원 규모로 전문적 진료가 가능한 병원 설립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서울녹색병원 양길승(54) 원장은 "원진레이온 산재 근로자들은 오랜 후유증으로 심장 콩팥 등의 상태가 악화하고 당장 수술을 필요로 하는 경우도 많다"며 "원진레이온 직업병 환자 900여명 중 절반은 다른 종합병원을 찾아야 했지만 이젠 모든 이들을 진료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병원들이 대개 산재환자들을 기피하다 보니 산재 노동자들이 맘놓고 질병치료를 받기 어려운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도 컸는데 앞으로 이들의 질병 치료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게 됐다.
400병상 규모의 종합병원으로 한방병원과 치과까지 갖춘데다 정신과 진료도 받을 수 있다. 인공신장실 등 첨단 시설도 갖추었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도 구리 병원에서 옮겨와, 직업병에 대해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연구 및 관리, 치료가 가능해졌다.
하지만 원진레이온은 산재 환자만을 위한 병원은 아니다. 양 원장은 "병원은 질병을 치료하는 것만으로 제 역할을 다하는 게 아니다"라며 "환자를 찾아가 질병을 돌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에 따라 지역의료센터도 가동, 의사와 사회복지사, 가정방문간호사 등 의료진이 지역사회의 장애인 또는 저소득 계층처럼 의료서비스를 받기 어려운 이들을 찾아나서 방문 진료 및 건강 검진, 건강 강좌 등을 벌일 계획이다. 지역사회를 돌보는 병원이 되겠다는 것이다.
이 병원은 노동자들과 인연이 매우 깊다. 우연히도 병원이 들어선 자리가 유신정권의 몰락의 계기가 된 YH사건으로 알려진 YH무역이 있던 곳이다.
녹색병원은 의료서비스의 '공익'적 역할을 고민하고 있다. 양 원장은 "질병 치료와 재활은 개개인의 사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같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며 "산재 근로자들에 대한 효과적이고 전문적인 치료 및 재활과 함께 지역사회에 거점을 둔 의료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건강한 지역사회를 만들려고 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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