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동안 밤잠 못자고 만든 양초에 불을 붙여 태우면 아깝지 않냐고 물으시는 분들이 많아요. 하지만 초는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놓여 몸을 태울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또 녹으면서 만들어지는 상상 밖의 아름다운 모습도 양초의 매력이죠.”1978년 양초에 손을 대기 시작해 25년간 각종 크기와 모양의 초를 셀 수 없이 만들었다는 양초공예가 김정희(45)씨. 경기도 광주에 있는 김씨의 작업실은 크기와 모양이 다른 양초로 가득하다. “하루에 수백개씩 만들 때도 있고 한 종류 초를 잡고 몇 달 동안 작업할 때도 있어요. 지금껏 만든 초의 수를 세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은데요.”
9월24일부터 1주일간 경북 봉화의 현불사에서 나라를 위한 296개의 초를 밝혔다는 김씨는 “많은 초가 한꺼번에 타는 것을 볼 때 가장 큰 희열을 느낀다”고 말했다.
매년 음력 3월3일과 9월9일을 기해 열리는 현불사 기도 행사는 김씨가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작품활동 중 하나다. 그녀의 양초는 이 같은 종교 행사는 물론 음악회, 꽃꽂이 발표회, 영화제 등에서 선상 댄스파티에 이르기까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불을 밝힌다.
김씨는 만화가였던 이모부 이고환 화백 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그림과 조각에 먼저 취미를 붙였다. 초와의 긴 인연은 다른 이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작은 작품을 만들면서 시작됐다.
독학으로 양초 만드는 법을 배워 주변의 서예가나 화가의 작품을 양초에 옮긴 뒤 작가에게 선물하곤 했는데 시간이 지나자 작가들이 김씨에게 양초를 직접 주문하기에 이르렀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절이나 성당 등에서 열리는 종교행사를 위한 주문도 심심찮게 들어오기 시작했고 1985년부터 본격적인 양초공예에 투신했다.
“서양 사람들은 자신을 위해 초를 켜는 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을 위해 초를 밝힙니다. 오늘 집에 가시면 스스로를 위해 촛불을 밝혀보세요. 은은하면서도 따뜻한 불의 기운이 지친 몸과 마음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위안을 줄 겁니다.”
/김신영기자 ddalg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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