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가을이 돌아오면 미국 대학 캠퍼스는 미식축구 열풍에 사로잡힌다. 경기가 열리는 매주 토요일마다 캠퍼스 타운 전체가 축제 분위기에 들뜨고 일주일 내내 어디를 가든 경기 이야기만 들려온다.불독을 마스코트로 하는 조지아대의 경기가 열리면 경기 전날부터 조지아주 전체에서 대학 상징색인 빨간 깃발을 단 차량들이 캠퍼스가 있는 애텐스시로 몰려든다. 전야부터 캠퍼스 인근에 진을 치고 파티를 즐기다가 9만명 넘는 수용인원을 자랑하는 대학경기장을 빨간 색으로 가득 채우는 응원단의 모습은 보기 드문 장관이다. 이 곳이 학생 수 3만명 남짓에 도시 전체 인구가 10만명 가량에 불과한 것을 감안하면 그 열기가 더욱 뜨겁게 느껴진다. 한국 학생들은 미식축구에 익숙하지 않지만 도시 전체의 분위기가 달아오르니 덩달아 흥이 난다.
우리의 시각으로는 학생들만의 잔치에 그칠 법한 행사가 전체 동문들의 파티, 나아가 도시 전체의 축제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외면적으로는 세계화(Globalization)의 첨단을 걷고 있는 미국인들이지만 그 내면에는 항상 자신들의 뿌리를 그리워하는 지방화(Localization) 의식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내 질문에 한 미국인 친구는 부시 대통령이 외국 지도자를 자신의 텍사스 목장으로 초대하는 예를 들며 미국인들이 얼마나 자신의 고향과 출신 배경을 중요시하는지를 설명해줬다.
프로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미국 매스컴에서 프로 스포츠 선수들의 경력을 소개할 때 가장 먼저 고향과 출신학교 정보가 나온다. 또 김병현 선수가 뛰고 있는 프로야구 보스턴 레드삭스가 뉴욕 양키스 구장에서 경기를 하면 뉴욕 시내 변호사들이 대부분 휴업을 한다는 농담도 있다. 보스턴이 있는 매사추세츠주 명문대학 로스쿨을 마친 변호사들이 뉴욕에 그만큼 많이 진출해 있고 그들은 아직도 보스턴을 응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 경제를 주무르고 국제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미국인들이지만 그들에게 "당신에게 가장 가치있는 것"을 꼽으라고 하면 대부분이 '가족'과 '지역사회(Community)'라고 답한다. 전직 대통령부터 일반 기업의 임원들까지 은퇴한 후 고향에 돌아가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것을 일종의 의무로 생각한다. 동문들이 모교에 기부금을 내는 규모도 우리 대학과는 큰 차이가 있을 뿐더러 자신이 사는 지역 학교를 위한 기부와 봉사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의 경우 고향을 사랑하는 사람을 지역주의자로, 모교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고 선후배 이름을 대면 "끼리끼리 논다"고 질타하는 분위기가 있다. 아마 세계화와 지역주의 타파라는 구호만 있었지 구체적인 실천기준과 지도층의 모범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이 상 연 미국 조지아대 저널리즘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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