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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세이 /군대 보리밥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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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세이 /군대 보리밥의 추억

입력
2003.10.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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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가는 군댄데 무슨 걱정이야."내일 모레면 훈련소로 떠나는 아들 녀석이 내던진 한마디에 마음이 괜히 섭섭해진다. 그런데 아들의 그 한마디는 내가 입대할 때 어머니께 했던 말과 똑 같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나는 겉으로는 무덤덤한 표정을 지으면서 섭섭한 속마음을 추스렸다. 퉁명스런 내 한마디에 어머니도 이런 심정이었겠지….

나는 어린 시절 사시사철 감기에 걸릴 정도로 허약했다. 그런 내가 입대해 논산 훈련소에서 기본교육 6주, 특기교육 4주 과정을 끝내고 하사관 학교에까지 입교했다. 힘든 훈련이었지만 무사히 16주를 보냈다. 훈련 끝내고 부대를 배치 받기 전 휴가를 받아 집에 들렀더니 어머니께선 "눈빛이 달라졌다"고 했다.

오랜만에 찾은 집은 포근했다. 모든 게 옛날 그대로였다. 그런데 어머니가 차려온 밥상을 받고 깜짝 놀랐다. 보리밥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보리밥을 먹지 않았기에 나는 군대에서 처음으로 보리밥을 먹었다. 군대 보리밥은 시커멓고 금새 딱딱해졌다. 게다가 당시 보리는 물에 불려야 쌀과 함께 밥을 지을 수 있었다. 부식 또한 형편없었다. 당연히 쌀밥을 기대하고 있었던 터라 나는 어머니에게 "갑자기 왜 보리밥을 먹어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어머니께서 따뜻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네가 군대에 가서 보리밥을 먹으면서 고생하는데 식구들이 무슨 낯으로 쌀밥만 먹을 수 있겠니." 난 말문을 이을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직감적으로 나의 병영 생활을 알아차린 것이다. 조금이나마 고통을 함께 하자며 가족들에게 내가 군복무를 마칠 때까지 보리밥을 먹자고 했단다.

어디 자식이 부모 마음을 손톱만큼이나 알까. 이제 부모님은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 자식이 군에 들어갈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니 문득 내가 "다들 가는 군댄데 무슨 걱정이야"하면서 부모님의 걱정을 무시했던 때가 생각난다.

오늘 일을 계기로 부모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지금 어떻게 자식 마음을 어머니에게 건네 드릴 수 있을까 생각하니 새삼 가슴이 메인다.

그래, 이제 나도 보리밥을 먹어야 할 때가 왔나 보다. 자식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것이 저 세상에 계신 어머니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릴 수 있는 방법이니까.

/simon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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