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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석의 TV홀릭]드라마 "야인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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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석의 TV홀릭]드라마 "야인시대"

입력
2003.10.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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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김두한(안재모·김영철)과 쌍칼(박준규), 시라소니(조상구) 등이 일렬로 서 있고, 그들 앞에는 기왓장이 쌓여있다. 몇 장씩 깰 수 있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그들은 멋쩍은 웃음을 지은 뒤 기왓장을 향해 '주먹질'을 한다. SBS가 '야인시대' 종영을 기념해 지난달 29일 방송한 특집 프로그램 '야인시대 스페셜-최고의 순간들'의 한 장면이다.불과 10분전까지만 해도 '시대'를 고민하던 '우국지사'들이 '주먹자랑'이나 하고 있으니 작품의 여운을 맛보고 싶던 사람들에게는 실망스러운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실 이 프로그램은 '야인시대'의 본질을 제대로 보여줬다. 분위기만 다를 뿐, 이 프로그램과 '야인시대'가 표방하는 것은 똑같다. 누가 제일 잘 싸우나, 그리고 그 '주먹질'을 얼마나 자주, 재미있게 보여주느냐는 것이다. '야인시대'에서 역사평가의 기준은 '주먹'이고, 가장 센 김두한은 '역사의 중심'이 된다. 그래서 좌익과 우익의 대립도 김두한과 가상 인물인 금강(나한일)의 한판 승부로 끝날 수 있고, 민주화 운동이 가능했던 것도 김두한이 여당의 횡포를 막아주었기 때문이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그렇기에 '야인시대'는 시대극이라기보다는 조작된 '신화'에 가깝다. 역사 속에 휘말린 한 인간을 통해 시대를 조명하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을 위해 역사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야인시대'만 놓고 보면, 한국은 독재를 온 몸으로 막은 김두한 없었으면 큰 일 날 뻔 했던 나라다.

물론 많은 시대극(사극)들이 역사의 진실과 극적 재미 사이에서 논란을 겪었다. 하지만 대부분이 지엽적인 사실 묘사의 문제였다면, '야인시대'는 역사인식 자체의 문제였다. 결국 결론은 주먹 센 자가 선(善)이라는 것이고, 역사가 존재하는 이유는 '화끈한 액션'을 시청자에게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야인시대'가 WWE 프로레슬링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있다면 단 하나, '야인시대'는 레슬링이 아닌 '역사'를 엔터테인먼트로 만들어버렸다는 것 뿐이다.

그러니 시대극이면서도 사실보다 왜곡이 더 많거나, 유족 등이 살아있는 특정인의 명예를 훼손해도 '별 일'이 아니다. 역사가 좀 왜곡되는 게 뭐 그리 큰일인가. 그래서 우리의 '야인'들이 재미라는 '사명'을 완수하면 그뿐이다. 배우 최민수가 극중에서 자신의 아버지인 고 최무룡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SBS와 제작진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내고 고소까지 한 것은 이런 '야인시대'의 문제가 단순히 재미의 문제로 끝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야인시대'로 인해 훼손당한 역사에 대한 평가와 개인의 명예는 다시 회복되기 힘들고, 재미라는 명분아래 역사를 인물간의 대결구도로만 바라보는 그 '특이한' 역사관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후속작인 '왕의 여자'를 '여인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야인시대'와 비슷한 문제를 드러냈던 '여인천하'의 PD가 만든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 불안은 더욱 커진다.

예전에는 독재자들이 역사와 개인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하지만 요즘은 일부 시대극들이 그것을 대신하는 것 같다. '야인시대'는 끝났다. 그러나 이 '역사 없는 시대극(사극)'의 '시대'는 계속될 것 같다.

/대중문화평론가 lennonej@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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