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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웃음을 아느냐"/코미디언 전유성·조선 광대 공길 가상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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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웃음을 아느냐"/코미디언 전유성·조선 광대 공길 가상대담

입력
2003.10.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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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이'의 작가이자 연출가인 김태웅(38)과 그의 열렬한 후원자 전유성이 4일 정동극장 야외 무대에서 만났다. 이들 두 사람은 웃음과 코미디, 광대 정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두 사람의 대화를 20세기 코미디언 전유성과 조선시대 광대 공길의 가상 대화로 재구성해 보았다.전유성 지금으로부터 약 500년 전에 살았던 선배 코미디언을 이렇게 만나게 되서 반가워. 하지만 난 아첨꾼인 댁보다는 끝가지 저항하다 연산의 칼을 맞는 장생이 더 좋아.

공길 내 친구 장생은 나의 반쪽이다. 그는 단지 연산의 미움을 받아 죽은 게 아니다. 우리를 웃을 수 없게 하는 세상과 싸우다가 죽었다. 난 광대들의 삶을 걱정하고 그들에게 안락함을 주기 위해 연산에 빌붙어 웃음을 팔았다. 그러나 끝내 장생이 옳았다는 걸 깨달았다. 참, 네가 20세기 대표 코미디언 중 하나라지? 네가 웃음의 참 의미를 아는지 어디 한번 들어보자.

전유성 웃긴 게 웃긴 거지. 웃음에 토다는 건 취미 없어.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하는 순간 웃음은 더 이상 웃음이 아닌 게 돼 버리니까. 사람들이 흔히 엎어지고 넘어지면서 하는 코미디를 저질이라고 비(非)웃는데, 아주 웃기지 않아. 정작 그렇게 욕하는 사람이 알고 보면 제일 크게 웃더라. 흔히 미국이니 프랑스니 끌어다 붙이는데 거기도 슬랩스틱 코미디 인기가 최고야. 너무 점잔 뺄 필요 없는 거 아냐?

공길 그래도 광대정신이라는 건 있어야 한다. 극중에 나오는 조선시대 전통 연희 '소학지희'(笑謔之戱)만 봐도 알 수 있다. 뭇 광대들이 탐관오리의 부정과 횡포를 재담과 곡예, 음담패설, 흉내내기 등 온갖 잡기로 조롱하지 않더냐. 때로는 인간을 억압하고 짓누르는 세상의 허황된 제도를 향해, 때로는 삶 자체의 모순에 대해 풍자의 칼춤을 추는 게 바로 광대다.

전유성 소학지희? 그거 조선시대 개그 콘서트 버전 아니오? 내가 '개콘' 기획자인데 그걸 모를 리 있나. 코미디언들이 서민들 편에서 힘있고 가진 자들을 조롱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어. 그런데 이상하게도 요즘 코미디에는 풍자가 빠져 있어. 노무현 대통령 흉내내는 데까지는 나갔지만 그 이상, 무어랄까 방향을 보여주지는 못하는 것 같아.

공길 그런데 넌 웃음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난 웃음이 삶을 긍정하는 한 방편이라고 본다. 결핍을 슬퍼하지 않고 모자람을 오히려 엉뚱한 상상력과 채우는 것이야 말로 웃음의 본질이다.

전유성 뭐 그렇게 딱 잘라서 '웃음이란 이런 것'이라고 정의하긴 힘들어. 웃음에는 수 없이 많은 종류가 있지. 보자마자 킬킬 거리는 심형래표 웃음도 있고 밍밍하면서도 '미소' 짓게 만드는 전유성표 웃음도 있으니까. 그런데 이거 우리 너무 진지한 거 아냐?

공길 맞다. 자고로 광대는 웃기지 못하면 댓돌에 머리를 처박고 죽을 각오를 해야 하는 법이다.

전유성 그럼 나도 댓돌에 머리 처박아야 하는 거야? 그건 싫은데.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애들 말고 어른도 웃길 수 있는 코미디언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 오늘 선후배들과 같이 이런 자리를 마련한 것도 다 그런 소망 때문이었어.

공길 부디 네 웃음이 희망과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봄바람 같은 것이길 빈다.

공연은 11월 2일까지 정동 극장에서 계속된다. (02)751―1500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 연극 "이"(爾)는…

연극 '이'(爾)를 공연 중인 정동극장을 4일 밤 엄용수, 최양락, 김미화, 이영자, 송은이, 남희석 등의 코미디언들이 점령했다. 연예계의 '대표 마당발' 전유성(54)이 선후배 코미디언들을 몽땅 이끌고 '이'를 보기위해 나섰기 때문이다. 영화 기획자, 광고 카피라이터로 활동했고 진로그룹의 이사로도 재직했던 있는 전유성의 기이한 전력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가 서라벌예대 연극연출과를 졸업한 '연극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전유성은 2001년 11월 코미디 전문극단 '코미디시장'을 결성, 지금까지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그런 전유성을 웃긴 연극 '이'는 조선왕조 대표 폭군 연산의 사랑을 받았던 궁중 코미디언 공길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공길은 연산군에게 웃음은 물론 자신의 몸까지 바친다. 그 대가로 공길은 광대를 다스리는 희락원의 우두머리 대봉(종4품)의 지위에까지 오른다. 그러나 결국 폭군 연산을 조롱하며 광대정신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친구 장생의 죽음을 계기로 웃음의 참 의미를 깨닫고 자결한다.

'이(爾)'는 임금이 종4품 이상의 신하를 높여 부르던 말이다. 극중에서는 연산군이 공길을 그렇게 부른다. 공길이 실존 인물이라는 점을 빼면 연산과 동성애를 비롯한 나머지 모든 이야기는 허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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