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인은 작년 대홍수에 이어 올해 이상고온 등 극단적인 자연재해를 겪었다. 우리나라는 작년과 올해 두 차례의 9월 태풍과 더불어 여름 내내 비속에서 살았다. 전에 없던 기상이변과 생태계의 변화가 세계도처에서 보고되고 있다. 이런 자연현상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이 지구온난화에 의한 기후 변화이다. 온난화의 주범은 화석연료 사용으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라는 것이 거의 정설로 자리잡았다. 그런데 기후변화를 대량살상무기에 비견하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영국의 기상청장을 지냈던 존 휴튼은 지난 여름 "나는 주저 없이 지구 온난화를 대량살상무기로 규정한다. 테러와 마찬가지로 온난화도 국경이 없으며 지금 당면한 문제다"라고 주장했다. 며칠 전에는 CNN창설자인 미국의 테드 터너가 "미래에 대한 예측을 해야 한다면 50년 안으로 인류가 멸종하거나 거의 멸종 상태에 처할 가능성이 절반 정도"라면서 "대량살상무기(WMD)와 지구 온난화가 내게서 낙관적인 전망을 앗아가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세계보건기구는 온난화에 의한 사망자가 연간 15만명이며 대부분 희생자가 개도국 어린이들이라고 밝혔다.
■ 온난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응책이 교토의정서다. 그런데 이 국제법이 발효하려면 55개국이 비준하고 비준한 선진국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선진국 전체배출량의 55%가 넘어야 한다. 미국이 불이행을 선언했기 때문에 이 조약의 효력발생은 러시아의 비준 여부에 달렸다. 그런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9월 말 모스크바에서 열린 세계 기후변화회의 개막식에서 "교토의정서가 각국의 사회·경제적 발전을 해쳐서는 안 된다. 온난화로 모피코트나 난방연료를 덜 쓰게 되니 러시아에 이익이다"고 비준거부 의사를 비쳤다.
■ 100년 전 아레니우스가 예언했듯이 지구 온난화는 시베리아를 농업지대로 바꾸는 등 러시아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가 그 외에 교토의정서에 소극적인 이유는 더 있다. 의정서가 발효되면 석유소비가 줄어들 것이니 석유수출국으로서 손해이다. 또 냉전붕괴 후 러시아의 이산화탄소 배출은 오히려 줄어들어 배출권을 팔 수 있는 입장인데 미국이 의정서비준을 거부했으니 거래선을 잃어버려 실익이 없어졌다. 게다가 부시 정부의 유혹과 압력을 받고 비준을 미룰 것이라는 소문도 나돌았다. 기후변화라는 대량살상무기도 결국 작은 나라만 못살게 만들 것 같다.
/김수종 수석논설위원 s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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