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하멜 표류기'의 저자인 네덜란드인 하멜이 조선에 표착한 지 350주년. 양국의 교류를 기념하는 행사가 연중 다양하게 열렸지만 하멜의 고향인 네덜란드 호르컴시에서 5일 열린 '수중 발굴' 작업은 현지인들의 특별한 관심을 모았다.한국에서 온 화가 조덕현씨는 이날 하멜의 생가 인근 링으하벤 운하에서 잠수부들을 동원해 하멜이 13년 동안 조선에서 생활하면서 사용했던 물건 99점을 인양했다. 글씨가 쓰인 접시 조각, 청동 솥, 도자기 파편, 요강, 바닷물에 삭은 나무토막 등이었다. 조선을 탈출해 고향으로 돌아간 하멜이 조선 땅에 대한 묘한 노스탤지어를 달래며 몰래 지니고 쓰던 물건으로 하멜이 죽은 후 그를 이해하지 못한 친지들에 의해 모조리 운하에 버려진 것들이었다.
그러나 이런 얘기는 허구다. 99점의 유물은 조씨가 작업을 위해 운하에 미리 파묻은 오브제들이었다. 그는 올해 몇 차례 '하멜 표류기'에 기록된 완도, 영암, 공주, 천안 등 하멜이 거쳐간 지역을 답사하면서 이 물건들을 구했다.
조씨는 고고학적 상상력에 바탕한 가상 발굴 작업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린 인물과 사건을 현실에 되살린 것이다. 이런 작업을 통해 350년 전의 네덜란드 사람과 조선 사람, 역사와 현재가 생생하게 만난다.
발굴 작업에 이어 10일부터 12월7일까지 호르컴 시립미술관에서는 네덜란드어로 '조우―우연한 만남'을 뜻하는 'ONTMOETING'이라는 이름의 조씨 개인전이 열린다. 여기서 그는 호르컴 사람들의 가족앨범이나 시 자료실에서 구한 19세기 사진 속 인물들의 모습을 대형 회화로 그린 '집단 초상화' 작업을 선보인다.
그런데 작가가 정교하게 되살린 19세기의 체육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25명의 네덜란드 청소년들 사이에, 10살 난 작가의 아들의 모습이 슬쩍 끼어 들어 있다. 마치 17세기 조선 사회에 하멜이 우연히 뛰어들게 된 것처럼. 네덜란드의 저명한 미술평론가 얀 도니아는 조씨의 작업을 "역사가가 헤아릴 수 없었던 역사에, 시적이고 환상적으로 새로운 장을 덧붙였다. 예술의 힘이란 그런 것이다"고 극찬했다.
이화여대 교수인 조씨는 빛 바랜 사진에서 한국 근현대사의 단면을 포착하는 극사실 회화 '20세기의 추억' '한국 여성사' 작업과, 2000년 11월 파리 주드폼미술관에서 벌인 '아쉬켈론의 개' 및 '이서국으로 들어가다' 등 가상 발굴 프로젝트로 독자적 세계를 구축한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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