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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까-한국의 대안운동]산모·태아중심 출산위한 "폭력없는 탄생"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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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까-한국의 대안운동]산모·태아중심 출산위한 "폭력없는 탄생" 모임

입력
2003.10.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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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임이 생긴 것은 올 2월. 조산원에서 친정엄마와 남편이 지켜보는 가운데 편안하게 첫딸 하린이(16개월)를 낳은 이향지(28·경기 성남시)씨가 인터넷에 '폭력없는 탄생'(cafe. Daum.net/easybirth)이라는 카페를 만들었다. 카페는 8개월만에 회원이 580명으로까지 늘어났다.'폭력없는 탄생'은 프랑스 의사 프레드릭 르봐이예가 아기 중심의 분만법을 제시하기 위해 1950년대에 쓴 책 제목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르봐이예는 눈부시게 밝은 조명과 시끄러운 병실에서 태어나야 하는 것은 아기들에게는 고통 그 자체라면서 자궁처럼 어둡고 조용한 곳에서 아기를 낳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아기가 나오자마자 탯줄을 자르고 거꾸로 들어서 엉덩이를 때린 뒤 엄마로부터 떼어놓는 것은 폭력이라며 아이를 낳은 후에는 가장 먼저 엄마 품에 뉘여 젖을 물릴 것, 탯줄을 즉시 끊지 말 것, 탯줄을 끊은 후에는 양수처럼 따스한 물에 넣어 아이가 서서히 중력에 적응하게 할 것 등을 제시했다. '폭력없는 탄생' 모임은 여기에 보태 가족들이 출산에 동참할 것을 권한다.

"하린이를 갖고 출산 관련 책을 많이 읽었다. '폭력없는 탄생'과 역시 프랑스 의사인 미셀 오당이 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출산', 자연식운동가인 최민희씨가 쓴 '황금빛 똥을 누는 아이' 같은 책을 읽으면서 어떻게 하면 우리 아기가 편하게 나올까 고민을 많이 했다." 그래서 이씨가 찾아낸 것이 조산원이었다. 조용하고 아늑한 곳에서 가족과 함께 출산을 맞는다는 것이 그의 조건에 다 맞았다. 첫아이였던만큼 응급상황이 생기면 어쩌나 하는 불안이 가시지 않았다.

병원과 조산원에 전화하며 저울질을 계속하던 그는 병원이 출산에 대해 겁을 주는 반면 조산원은 "산모들의 응급상황이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다. 징후가 오면 종합병원으로 보내니 걱정말라"고 도닥여주는 태도에서 조산원을 선택했다. 그가 하린이에 대해 자랑스러워 하는 것은 "동네 어른들이 '아이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다'고 할 만큼" 순하다는 사실. 그는 이것이 편안한 탄생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폭력없는 탄생' 회원들은 무엇보다 자연분만 지지자들이다. 이들이 조산원을 선호하는 것은 자연분만에 병원보다 조산원이 적극적이기 때문이다. 가족과 함께 하니까 불안감이 덜한 것도 큰 이유이다.

복음이(12개월) 엄마 김현주(30·경기 안산)씨는 병원을 갈까 조산원을 갈까 고민하던 차에 양수가 터져서 상담하던 조산원으로 달려왔고 시현이(6개월) 엄마 이시해(26·경기 안산)씨는 병원을 다니다가 막달이 되도록 분만에 대해서 차근히 말해주지 않자 조산원을 선택했다. 이시해씨의 경우 병원에서는 계속 '애가 머리가 크다'며 은근히 제왕절개를 권했는데 그는 회음열상조차 입지 않고 시현이를 낳았다. 조산원에서는 회음절개를 억지로 하지 않기에 가능했다. 회음절개는 태아가 머리를 내미는 순간 산모의 아랫도리를 메스로 잘라줘 태아가 빨리 나오도록 하는 조치. 병원에서는 분만의 당연한 과정으로 해오고 있다.

시현이를 받은 김옥진(42·경기 안산 아기탄생 조산원)씨는 간호사 경력 20년의 조산사. 그도 병원 분만실에서 근무할 때는 회음절개나 아이가 태어난 후에는 산모에게 자궁수축제를 주사하는 것이 당연한 절차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조산사로 활동하면서 회음절개를 하지 않자 병원에서 찢는 정도보다 훨씬 적게 회음열상이 일어나는 것을 경험했다. 또 태어나자마자 아기가 엄마의 젖을 빨면 그 순간부터 자궁수축이 일어나니 약제가 필요없었다. 그는 "건강한 산모라면 자연의 흐름에 맞춰서 스스로 아기를 낳을 줄 안다. 의료진은 다만 그걸 돕는데 그쳐야 한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의 분만 현실은 의료진의 편의대로 임산부들의 행동을 제한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김씨가 받은 아기 중에는 역아도 있다. 첫 애를 자연분만으로 낳은 서은희(34·서울 은평구 불광동)씨는 둘째가 거꾸로 섰다며 병원이 제왕절개를 권유하자 조산원을 찾았다. 서씨가 자연분만을 고집할 수 있었던 것은 친정어머니의 경험이 한 몫을 했다. 서씨의 어머니 이락순(66·은평구 갈현2동)씨는 "거꾸로 나오는 애들이 자연분만하는 것을 친정쪽에서 둘, 시집쪽에서 하나를 직접 보았기 때문에 딸 옆에 있으면서 걱정말라고 자신감을 줄 수 있었다"고 한다. 서씨의 아기는 엉덩이부터 나왔고 조산사가 손가락으로 다리를 걸어 빼내자 팔, 머리 순으로 나왔다. 2시간만의 순산이었다. 물론 김씨는 "태반의 위치나 탯줄이 목에 걸리는지를 잘 봐야 가능하다"고 한다.

회원인 조문선(27·경기 시흥)씨는 조산원에서 이틀이나 기다려 자연분만을 했다. "이틀째가 되니까 남편 회사에서까지 왜 병원 안가느냐고 전화가 오더라"는 조씨는 아기가 제 때 건강하게 나올 것이란 확신이 있어서 양수가 조금씩 흘러나왔지만 전혀 불안하지 않았다고 한다. 조씨가 조산원에서 아기를 낳으려는 것을 극력 반대했던 남편 정재훈(32)씨는 첫 딸 남주(10개월)의 탄생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완전히 조산원 홍보요원으로 바뀌었다. "대구 사람이라 아기야 그냥 나오는 거지 웬 호들갑이냐는 분위기서 살았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는 모습을 직접 보니 마음이 달라졌다. 탯줄을 자를 때는 눈물이 나더라."

조산원은 조산사가 운영하는 분만의료시설로 조산사 국가고시에 합격한 사람만이 낼 수 있다. 조산사는 보건복지부에서 인정하는 의료기관의 분만실에서 간호사로 1년간의 수련을 거친 사람에 한해 응시 자격이 주어진다. 대한조산협회에 따르면 2003년 6월말 현재 전국의 조산사는 8,990명. 이 가운데 1,963명이 조산사로 협회에 등록·활동중이며 조산원은 104군데 정도가 있다. 나머지는 분만 전문병원에서 조산사로 활동하고 있다.

물론 병원이라고 다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고 조산원이라고 다 좋은 것만은 아니다. 병원 중에도 산모와 아기 중심의 출산을 돕는 병원이 최근 들어 늘고 있고 성급하게 아이를 받는다고 했다가 브이벡(제왕절개를 받은 여성의 둘째 아이를 자연분만하는 것)을 해서 사고를 일으킨 조산원도 있다. 출산비는 양쪽 모두 17만원에서 40만원선으로 큰 차이가 없다. 조산원이나 병원마다 질이 천차만별이겠지만 조산원이 산모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자연분만에 더욱 적극적이라고 회원들은 보고 있다.

이향지씨는 "병원이나 조산원에 대해서 평가하는 작업도 해야 할 것 같은데 아직은 역부족"이라며 "이런 모임에서 엄마들의 이야기가 좀더 큰 목소리를 내면 출산 환경 전체가 서서히 바뀌지 않겠느냐"고 기대했다.

서화숙 편집위원 hssuh@hk.co.kr

전국 15개 병원 모여 인권분만운동 이끌어

병원 가운데도 산모와 태아 중심의 분만을 지원하자는 인권분만 운동이 일고 있다. 개업산부인과의들이 모여 2001년 6월에 만든 인권분만연구회(회장·김상현 beautybirth.com)도 그 중 하나이다.

이 연구회 회원 병원은 자연분만을 많이 하자 모유수유를 시키자 산모를 교육시키자를 기치로 산모와 태아를 위한 '인권 분만'을 지키고 있다. 인권분만의 내용은 르봐이예 출산법과 동일하다.

이 연구회 김상현(53·일산 동원산부인과 원장) 회장은 "아기가 태어나는데 필요한 옥시토신 엔도르핀 같은 호르몬은 산모의 대뇌 구피질에서 자연스레 나온다. 산모가 하고 싶은 행동을 못하게 간섭하는 것은 자연스런 산모의 역할을 막는 것이므로 최대한 자연의 순리를 따를 수 있도록 산모에게 편안한 환경을 만들어 아기를 낳도록 한다"고 일러준다.

일산 동원산부인과, 새생명산부인과, 인천 서울여성병원, 인천 준산부인과, 분당 참산부인과, 안산 이지은산부인과, 천안혜성산부인과, 광주 호암산부인과, 진주 고려병원, 익산 제일산부인과, 이천 양정분 산부인과, 춘천 인성병원, 한순심산부인과, 해성클리닉, 청주 김석제산부인과 등 15개 병원이 회원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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