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우리 동네(수원시 인계동) 골목길에 30대의 한 외국인 여성이 좌판을 깔고 물건을 팔기 시작했다. 그녀는 어둠이 깔릴 무렵 나타난다. 파라솔을 세우고 검은 가방에서 목걸이, 귀걸이, 반지 같은 액세서리를 꺼내 바닥에 진열하고 행인들을 불러 세운다. 어눌한 한국말을 쓰는 것으로 보아 한국에 온 지 얼마되지 않은 것 같다.우연히 그녀와 인사를 나누게 됐다. "페루에서 온 지 2년 됐어요." 구릿빛 피부를 가진 그녀는 조심스런 표정을 지으며 자신을 소개했다. 남편은 수원 남문 근처에서 행상을 한단다. 아이들은 페루에 남아 있고, 페루에 있는 어머니가 손수 행상 물건을 만들어 보내준다. 잉카문명에서도 알 수 있지만 페루인의 수공예 솜씨는 뛰어나다. 그녀는 가족 이야기가 나오자 "아이들이 보고 싶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이후 나는 그녀를 페루 아주머니로 부르게 됐다. "목이 좋은 곳에서 물건을 팔지 그래요?" "어휴, 텃세 때문에 발도 못붙여요."
남편도 가끔씩 이 곳에 와서 부인을 거들어 주었다. 찬거리를 사러 가는 길에 이들에게 컵라면이나 치킨을 주면 무척이나 고마워했다. 어느 날은 페루 아주머니의 행상 자리에 자동차가 주차 되어 있었다. 나는 한국말이 서투른 그녀를 대신해 차주에게 자리를 비워달라는 전화를 대신 해주기도 했다.
태풍 매미가 전국을 휩쓸던 무렵, 갑자기 페루 아주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태풍 매미의 피해를 입은 걸까, 아니면 강제추방 됐나. 궁금증이 꼬리를 물던 터에 우연히 TV 뉴스에서 페루 아주머니의 남편을 보게 됐다. 남편은 마산에서 태풍 피해복구 자원봉사요원으로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쑥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한국인들 덕분에 페루에 있는 자식들에게 교육비를 보내고 있습니다. 고국에 가기 전에 한국인에게 보답을 해야 할것 같아서요…."
알고 보니 페루 아주머니는 담석에 걸려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의료보험이 되지 않아 수원의 어느 외국인 노동자 교회 주선으로 간신히 입원했다고 한다. 남편은 아내 병구완을 하기에도 바쁜데 짬을 내 자원봉사에 나선 것이다. 사정을 듣고 보니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아내가 아픈 처지에도, 먼 이국에서 한국인에게 보여준 그의 선행을 생각하니 가슴이 찡해온다. 그는 나에게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었다.
/simon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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