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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길위의 이야기]우애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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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길위의 이야기]우애의 딜레마

입력
2003.10.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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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나 제사를 맞아 시골로 내려가면 어느 집안에나 약간 소외된 '아저씨'들이 있다. 대체로 촌수는 좀 아리송하다. 고모부이기도 하고 오촌 당숙이기도 하고 외가쪽 육촌이기도 한 이 아저씨들은 본 행사에 들어가기 전에 벌써 슬쩍 취해 있고 집안 어른들의 담화에도 잘 끼어 들지 못해 겉돌기 일쑤다. 그리고 특별히 뭘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뭔가 죄라도 지은 듯 늘 주눅들어 있다.주특기는 한쪽 구석에 집안의 어린 아이들을 모아놓고 일장 훈시를 하는 것이다. 술기운을 빌어 횡설수설하는 가운데 아이들은 지루하여 몸을 비비 꼬고, 지나가는 여자 어른들은 "그만 하라"며 구박을 한다. 그런다고 그만하면 정말 할 일이 없기 때문에 이들은 훈시를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주제는 언제나 비슷하다. 바로 '형제간에 우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순간 '우애'야말로 그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이다. '우애'없는 세상에서 떠돌다가 '우애'를 찾아왔건만 여전히 '우애'없는 친척들에게 실망한 그들은 아직 '우애'가 뭔지도 모르는 애들을 붙잡고 심각한 얼굴로 '우애'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것이다. 그러면 오줌도 마렵고 나가 놀고도 싶은 어린 아이들은 '우애'라는 말만 들어도 끔찍해 하기 시작하고 그 후로도 '우애'를 강조하는 사람만 만나면 슬슬 피하게 된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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