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평 한국일보 편집위원의 '천일평 스포츠포커스'가 7일부터 매주 화요일자에 실립니다. 천 위원은 1972년 한국일보사에 입사, 한국일보 체육부 차장, 일간스포츠 야구부장 편집위원 편집인을 역임했습니다. 천 위원은 30여년간 체육 전문기자로 활동하면서 얻은 경험과 식견을 바탕으로 국내외 스포츠 현안과 뒷이야기 등을 교훈적이면서도 흥미롭게 엮어갈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사랑과 성원을 바랍니다. /편집자 주
"기분이 묘했다. 내가 자랑스러우면서도 어릴 때 나의 우상이었던 박철순 선배로부터 홈런을 뺏다니 정말 죄송스러울 뿐이다"
지난 1995년 경북고를 졸업하고 바로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한 이승엽은 당초 대투수가 꿈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팔꿈치 고장을 일으켜 타자로 전향한다. 그 불행은 성공가도의 씨앗이 됐다.
그해 4월 15일 잠실 데뷔전. 9회초 대타로 나온 이승엽은 김용수(LG)를 상대로 첫 안타를 빼앗고 5월 2일 광주에서는 이강철(해태)로부터 첫 홈런을 기록했다. 이어 7월 23일 잠실에서 박철순에게서 스리런 홈런을 기록하는 등 일찌감치 대물로서의 면모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9년째인 올해 6월 23일 이승엽은 세계에서 가장 어린 나이(26년10개월4일)에 개인 통산 300호 홈런을 날려 왕정치(27년3개월11일)와 알렉스 로드리게스(27년8개월6일) 등의 기록을 앞질렀다. 2일 대구 경기에서는 올시즌 56호 홈런을 극적으로 쏘아 올려 아시아 홈런신기록을 갈아치웠다.
이승엽은 5일 준플레이오프 2차전을 끝으로 국내에서의 플레이를 사실상 마감했다. 메이저리그 행 결심을 굳힌 이승엽은 일본 요미우리의 마쓰이 히데키가 지난해 일본시리즈에서 우승한 후 뉴욕 양키스에 입단한 것처럼 기분좋게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팀이 작년 우승 후유증을 극복 못하고 흔들리는 바람에 준플레이오프로 종지부를 찍어야 했다.
'국민타자'라는 호칭이 붙은 이승엽이 미국 진출에 성공할 경우 개인이나 우리 야구계에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한편으로는 만인의 사랑을 받던 이승엽이 떠난 공백은 클 것이고 한국야구는 또다른 이승엽을 척박한 그라운드에서 찾아내야 한다.
물론 당사자에겐 메이저리그에서의 성공 여부가 큰 관심사이다. 일각에서는 "마쓰이만은 못하지 않느냐"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그러나 올해들어 유난히 날카로워진 타격과 빨래줄같이 낮게 깔려가는 그의 홈런 타구 등을 감안하면 수준 높은 투수들이 즐비한 그곳에서도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은 충분해 보인다.
그의 순한 인상 때문에 근성이 약하지 않겠느냐는 조심스러운 지적에 대해서도 김응용 삼성 감독은 "보기보다 훨씬 강한 근성을 가졌다"며 믿음을 보내고 있다. 실제로 이승엽은 56호 홈런을 시즌 마지막 날에 날렸고, 지난해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패색이 짙은 상황에서 드라마틱한 동점 스리런을 때려낼 정도로 끈질김이 강했다. 시드니 올림픽에서도 마지막 순간에 결정타를 날렸다. 마쓰이보다 두살이나 어린 것도 보다 큰 가능성을 점치기에 유리한 점이다.
이제 이승엽은 미국이란 거대한 정글에서 헤쳐나가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 그가 투수에서 최고타자로 변신한 능력을 바탕으로 신천지에서도 우렁찬 사자후를 터뜨릴 것으로 믿는다.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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