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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유학시대]<18>확실한 기술을 찾아… "틈새유학"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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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유학시대]<18>확실한 기술을 찾아… "틈새유학" 뜬다

입력
2003.10.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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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영어 잘한다'는 것만 가지고는 경쟁력이 없고 아무리 경영학석사(MBA)를 따고 돌아와도 취업이 쉽지 않은 시대다. 이 때문에 '확실한 기술 없이는 유학 후 대안이 없다'는 생각으로 아직 남들이 많이 진출하지 않은 전문 분야를 택해 떠나는 이른바 '틈새 유학' 인구가 늘고 있다. 국제유학원 정남환 원장은 "몇 년 전부터 요리, 애완동물 미용, 항공, 자동차 튜닝, 장례학, 스포츠 매니지먼트 등 독특한 분야를 찾아 유학을 가고 싶다며 문의해오는 이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말했다.호텔과 요리 가장 인기

서울 힐튼호텔 일식당 '겐지'의 조리장 양재영(31)씨. 이 호텔의 스시요리를 책임지는 그는 1994년 일본으로 요리 유학을 떠났던 '틈새유학'의 원년멤버다. 고교 졸업 후 진로를 잡지 못해 갈등하다 "요리의 시대가 온다"는 아버지의 권유를 받아들여 이 분야에 승부를 걸었다. 장문의 에세이와 한자 읽기 등 까다로운 입학시험이 때문에 2년동안은 일본어 공부에 주력한 후 도쿄(東京) 하토리(服部) 영양전문학교에 입학했다. 양씨가 이 학교 다닐 때 전체 500여명의 학생 중 유학생 수는 10명이 채 되지 않았고 동기 중 한국인은 단 3명에 불과했다.

양씨는 "함께 공부하던 선배나 동기들의 상당수가 청담동의 유명 레스토랑에서 요리사로 일하고 있다"며 "경기가 안 좋은 와중에도 요리 시장은 오히려 커지면서 대기업 요리 사업부 등에서 직접 요리학교를 찾아가 학생들을 스카우트해 간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요리와 호텔은 최근 2∼3년간 급격히 유학생이 늘어난 분야다. MBC아카데미 국제교류센터 김건영 대리는 "호텔 중에서도 흔한 호텔경영보다는 리셉션, 음악, 와인 구입 등 세부 전공을 문의하는 이들이 많다"며 "호텔에서 장기간 근무했지만 별다른 전망이 보이지 않을 때 호텔 안의 위치를 공고히 하기 위해 떠나는 이들도 꾸준히 느는 추세"라고 밝혔다. 스위스 호텔학교가 많이 알려져 있지만 학비가 1년에 4,000만원 정도로 비싸 요즘은 호주나 뉴질랜드 쪽으로 눈길이 쏠리고 있다.

A호텔에 3년간 근무하다 다음달 뉴질랜드로 호텔 유학을 떠나기 위해 휴직한 S씨(여·25). 전문대 관광통역학과를 졸업하고 호텔에 들어갔지만 4년제 대학을 졸업하거나 유학을 다녀온 후배들에게 번번히 좋은 자리를 뺏기고 몇 년 째 식당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과감한 결심을 했다. S씨는 "호텔 각분야 중에서도 '리셉셔니스트'가 되기 위한 과정을 준비중"이라며 "돌아온 후 확실한 자리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지만 몇 년간 쳇바퀴 돌 듯 전전하던 식당은 벗어날 수 있지 않겠냐"며 웃었다.

항공분야도 인기

비행사가 되기 위한 항공 유학도 나날이 인기를 더해가고 있는 분야. 평생이 보장된 안정적 직업이지만 국내에서는 입문할 수 있는 길이 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이나 호주 등의 비행학교를 나와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미국 항공청(FAA) 비행 자격증을 취득하면 세계 어느 항공사에도 취업이 가능하고 국내 항공사 입사나 연봉에서도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 요즘엔 학과는 수강비가 싼 호주에서, 비행은 시간당 비행 강습비가 싼 미국에서 유학하는 학생도 상당수다.

93년 출국해 미국의 유일한 4년제 항공전문대인 엠브리리들 항공대를 졸업한 아시아나항공 조은성(34) 부기장은 "우리나라에서 민간인이 항공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길은 한국항공대 정도로 극히 제한돼 있다"며 "미국의 경우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면 따로 학교를 다닐 필요 없이 조종면허만 취득하면 된다"고 말했다.

대학 졸업 후 전공을 따라가던 예·체능계 졸업생은 유학 후 강사 자리 하나 얻기 어렵다는 위기감 때문에 전공을 세분화해 유학하는 추세다. 강릉대 미대를 졸업하고 이탈리아 밀라노 국립미술원에서 5년간 무대미술을 공부한 지영석(31)씨는 "시노그라피(무대를 총체적으로 디자인하는 직종) 분야의 경우 외국에서는 영화나 연극 등에 두루 쓰이지만 한국에서는 제대로 된 단어가 없을 정도로 알려지지 않은 분야인 것이 오히려 매력이었다"고 말했다. 7월 귀국한 지씨는 삼성 에버랜드 전략기획팀에서 놀이공원 전체의 '그림'을 계획하는 일을 하고 있다.

'틈새 유학=취업 보장'은 아니다

'틈새 유학'은 시대와 사회 분위기에 따라 유행을 많이 탄다. 박찬호 김병현 등 국내 스포츠 스타의 해외 활약은 스포츠 매니지먼트의 붐을 불러 일으켰고 일본 자동차의 수입이 늘면서 일본으로 자동차 정비 유학을 떠나는 이들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드라마 '올인'의 선풍적 인기는 카지노 딜러 유학을, 케이블TV 캐치온에서 방영하는 미국 외화 '식스 피트 언더'의 인기는 장례학 유학생을 양산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유행에 따라 성급히 전공을 결정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정 원장은 "전문기술 분야 유학을 떠났다가 돌아와 취업이 되는 경우는 10%에 불과하다"며 "학교 졸업 후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해외에서 1∼2년의 경력을 쌓고 돌아오는 편이 국내 취업에 훨씬 유리하다"고 강조했다.

/김신영기자 ddalgi@hk.co.kr

■ 도쿄제과학교 출신 김동민씨

"유학의 제일 목표는 역시 학업이겠지만 전공과 관련해 최대한 많은 경험과 인맥을 쌓는 것도 그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

1999년 일본으로 유학, 도쿄(東京)제과학교를 졸업하고 지난해말부터 CJ에서 운영하는 '투썸플레이스'에서 케이크마스터 겸 개발과장으로 일하고 있는 김동민(33)씨. 그는 3년간 유학 생활 중 현지 제과점에서 일하며 일본 최고의 제과·제빵 명인들을 만나 일한 것이 평생 도움이 될만한 기억이었다고 말한다.

1년 일본어 과정과 2년간의 제과학교 양과자 과정을 마치는 동안 김씨는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도쿄 곳곳의 유명 제과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90년 고교 졸업 후 바로 제빵의 길에 접어들어 '신라당' 등에서 일하며 뼈가 굵은 김씨였지만 세계인이 모이는 도쿄의 유명 빵집에서 일하고 싶은 욕심은 떨치기 어려웠다.

김씨는 학교를 다니며 외국인은 일하기 힘든 '비고' '몽상클래르' 등의 유명 빵집에 수시로 얼굴을 비추고 일하고 싶다고 줄기차게 부탁했다. 정성을 갸륵하게 여겼는지 2000년부터 '비고'에서, 2001년부터는 '몽상클래르'에서 일하게 되는 행운을 얻었다. 케이크를 만드는 일에 있어서도 발휘되는 일본인 특유의 장인정신과 섬세한 정성은 아직까지도 인상적으로 남아있다.

김씨는 전문 제빵인이 되기 위해 유학을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두 가지를 당부했다. 하나는 유학을 떠나기 전에 자신의 전공분야에 대한 경력을 한국에서 어느 정도 쌓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귀국하기 전 현지에서 어느 정도 전공 분야에 대한 사회 경험을 쌓고 오는 것 또한 추후 경력관리에 유용하다고 김씨는 지적한다.

/김신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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