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고교에서 학생 생활환경조사를 했더니 부모의 직업을 건축업이라고 쓴 학생들이 많았다. 결석·가출 등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들의 대부분이 그런 경우였다. 알고 보니 건축업이란 노가다판에서 일하는 막일꾼이었다. 용접이든 미장이든 기술이 있으면 하루 20만원도 받지만, 별다른 기술이 없는 사람들은 날품을 팔아 봤자 하루 6만원을 받는 게 고작이다. 그나마 일거리가 있으면 다행이다. 올해에는 비가 자주 내린 데다 화물연대의 운송거부 같은 사건까지 겹쳐 공치는 날이 특히 많았다. 그런 집안의 아이들은 학교에 수업료 내기도 어렵다.■ 국감자료에 따르면 올해 8월말 현재 수업료를 내지 못한 전국의 공립 중고교생은 2만6,090명으로 지난해 6,172명의 4배 이상이다. 사립학교까지 합치면 훨씬 많다. 최근 지방의 한 사립고가 수업료 미납자들에게 출석정지처분을 내렸다가 비난을 받았다. 돈을 내지 않으면 학교에 오더라도 결석으로 처리했다. 재정사정이 나빠 어쩔 수 없었다지만, 돈을 내지 않았다고 학교에서 내쫓는 것은 정서적으로도 용납되지 않는 일이다. 뒤늦게 도교육청이 나서 가정사정이 어려운 경우 수업료 감면을 해주도록 했으나 이미 학생들이 입은 상처는 크다.
■ 가정사정이 어려워 중퇴하는 중고생들이 많다. 학업중단 사유에서 가장 비중이 큰 것은 학교에 대한 부적응인데, 이런 경우야 어쩔 수 없다고 치자. 돈이 없어 학교를 그만두어야 한다면 얼마나 슬프고 안타까운 일인가. 그런 중고생이 지난해에만 1만 5,000명을 넘었다. 그런데 저소득층자녀 수업료 보조금은 해마다 줄어드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지난해 1,868억원이던 국고 보조금이 올해 1,072억원으로 줄었다. 중학 의무교육 확대에 따른 결과라지만, 지원대상 감소폭에 비해 예산 감소비율이 훨씬 크다. 내년에는 더 줄어든다고 한다.
■ 기업은 신규채용을 하지 않고 30대까지 구조조정의 위협에 처한 상황이다. 사상 최저 금리로 장학재단들의 운영난도 심하다. 어려운 학생들은 더 어려워진다. 과거엔 집안이 어려우면 고학을 했다. 고학생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이 사는 눈 맑은 소년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이제는 향락업소 취업, 원조교제 같은 말만 들린다. 지금은 힘들게 일하는 시대가 아니라고 믿는 아이들에게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용기만 강조해서는 소용이 없다. 건전한 아르바이트자리를 개발해 주어야 한다. 새로운 고학생문화가 절실하다.
/임철순 수석논설위원 yc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