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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歐 철학자 지젝 교수 내한/"지금은 일상화한 이데올로기가 지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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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歐 철학자 지젝 교수 내한/"지금은 일상화한 이데올로기가 지배"

입력
2003.10.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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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캉과 헤겔을 접목한 철학으로 게오르그 루카치 이후 동유럽 철학자로는 가장 큰 명성을 얻고 있는 슬로베니아의 슬라보예 지젝(54) 류블랴나대 교수가 5일 방한했다.'잉여 쾌락' '이데올로기' '가상과 실재' 등의 개념을 중심으로 사회주의 독재와 포스트모더니즘을 동시에 비판하는 그는 슬로베니아가 옛 유고 연방에서 독립한 이듬해인 1990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도 한 사회 참여형 철학자이다. 또 영화를 축으로 독특한 문화 비평을 잇따라 내놓아 세계적 관심을 끌고 있다. 이번 방한에서는 한국철학회가 여는 제7회 다산 기념 철학강좌에서 '탈이데올로기 시대의 이데올로기'를 주제로 연속 강연을 한다.

"카페인 없는 커피, 알코올 없는 맥주, 아편을 대신한 마리화나, 사이버 섹스. 실체가 없는 대상은 포스트모던 시대의 특징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가상의 열망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6일 기자 간담회에서 그는 가상 현실이 실재를 대체하는 현대문화의 경향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또 반대로 "실재에 대한 강렬한 열망은 근본주의적 충동을 부추기고 결국 혁명이나 테러리즘, 파시즘, 스탈린주의 등 편집적 도착증을 낳는다"며 "그 사이에서 자유, 인권 등 민주적 가치를 존중하는 제3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젝 교수는 세계는 지금 미국의 신보수주의자(네오콘)들이 주도하는 '소프트 혁명' 시대를 맞고 있다고 분석했다. "알 카에다 조직원에 대한 고문이 정당한지를 토론하는 것 자체가 은연중에 인권 파괴를 상식으로 만드는 것"이라며 이런 상대주의적 경향을 네오콘이 주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대는 타자를 너무 쉽게 자기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며 "한국을 포함, 많은 나라가 미국 중심의 사고에 물들어가고 있는 것도 그런 경우"라고 꼬집었다. 그는 "우리는 이데올로기가 사라진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데올로기가 철저히 일상이 되어 삶의 태도를 규정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지젝 철학의 핵심을 펼칠 강연은 7일 오후 3시 서울대 박물관에서 '실재의 열망, 가상의 열망'을 시작으로 모두 네 차례 열린다. 9일 오후 5시에는 대구 계명대 성서캠퍼스에서 '유전공학에서 정신분석학으로', 10일 오후 2시 프레스센터에서는 '소프트혁명의 시대', 12일 오전 9시 30분 서강대 다산관에서는 '파국과 함께 살아가기'를 주제로 강연한다. 그는 이에 앞서 8일 오후 6시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리는 '지젝과 함께 영화보기' 행사에서 영화를 통해 자신의 독특한 정신분석 및 사회사상을 펼쳐보일 계획이다.

/글·사진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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