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로 만난 사람과 좋은 인연이 되기는 쉽지 않다. 일이 끝나면 인연도 끝나버리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내 일이 소중한 만큼 타인의 일과 부딪히기도 쉽다. 하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톱 디자이너 진태옥(69)씨에게는 일로 만났지만 "이제는 잠옷을 입고 만나도 부끄럽지 않은 사이"가 있다. 미니멀리즘 인테리어의 대가로 불리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이종환 옴니 디자인 대표다. 주관이 뚜렷하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좀 부드럽게 대하자고 스스로 다짐한다" 할 정도로 일에서는 깐깐하기로 소문난 진씨이기에 그 인연이 궁금했다.1970년대 초반 우연히 찾은 전시장. 대들보와 비슷한 단순한 형태, 푸른색과 회색이 칠해진 단순하면서도 독특한 작품이 진씨의 눈을 사로잡았다. 단순함과 독특함의 조화는 60년대 이화여대 앞에서 양장점 '디 쉐네'를 냈을 때부터 마음에 담고 있던 것이었다. "가슴이 '쿵'하고 내려 앉는 듯 했어요. 요즘 말로 코드가 맞았던 거지요. 갤러리에 문의해 무턱대고 사무실로 찾아 갔어요." 마치 "바위 같던" 이 대표의 첫 인상에 어쩐지 모든 것을 다 맡기자는 마음이 들었다.
패션과 인테리어가 아직 이질적인 분야로만 여겨지던 때 진태옥씨는 자신의 브랜드 '프랑소아즈'의 모든 매장을 이 대표의 손에 맡겼다. 코드가 맞았던 탓일까, 이 대표가 만든 공간은 한번도 진씨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80년대 중반 이후로는 화려한 금장과 곡선이 주를 이뤘던 당시 의류 매장의 개념을 뒤엎는 시멘트 소재의 단순한 공간으로 진씨의 주가를 더욱 높여 주었다. 이 대표가 개장을 불과 3일 앞두고 2층으로 올라가는 모서리가 마음에 안 든다며 다 부수는 바람에 진씨가 이미 돌린 초대장까지 거두어 들인 일화도 있다. 이 대표는 그만큼 철저했다.
지금도 진태옥씨는 이 대표가 만든 청담동 본사에서 일하고 역시 이 대표가 지은 집에서 산다. 한남동 집은 진씨의 말을 빌면 "살면 살수록 재미난 공간"이다. 심플한 공간들이라 마음대로 연출할 수 있기 때문. 또 많은 영감을 주는 곳이기도 하다. "긴 복도 끝에 작은 방, 5m가 넘는 천정과 거실 전면의 한실 창호, 마당 한 가운데 난 담장 등 의외의 요소들이 흥분을 일으키죠."
진태옥씨는 이 대표에게 '넓은 눈'을 배웠다고 한다. 아무래도 옷에 집중해야 하는 패션 디자이너보다는 큰 공간을 보아야 하는 인테리어 디자이너이기에 가능했을 터이다. 동시에 이 대표는 옷에 대한 안목으로 진씨를 놀라게 하기도 한다. "10여년 전인가, 내가 자개 단추를 달았었는데, '선생님, 남자 단추 같은 거 한번 달아 보시죠?' 하는 거예요. 말대로 했더니 정말 내가 머리 속에 그렸던 느낌이 나더라구요."
한참 아래인 이 대표에게 진태옥씨는 투정이나 타박조로 이야기할 때가 많다. 하지만 이 대표는 늘 투박하게 몇 마디 할 뿐, 그의 말을 그대로 따라 준다. 그렇게 30년이 흐르다 보니 서로 의지하는 사이가 되었다. 이제 이 대표는 진씨에게 가족이나 다름없다. 진씨의 아들인 노승욱(40)씨도 이 대표의 사무실에서 인테리어 일을 배웠고 이 달말 토탈 인테리어 브랜드인 '태 홈'을 시작한다. 이 대표가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도와준 것은 물론이다.
"이렇게 오래도록 이어지는 게 인연 아닐까요. 끝날 때까지 같이 가고 싶은 사람입니다." 많은 것을 받고도 준 것은 없다는 진태옥씨는 언젠가 꼭 이 대표와 이제는 불가분의 관계로 여겨지는 패션과 건축의 만남을 함께 만들어 볼 작정이다. 그 때도 역시 코드는 단순함과 독특함일 것이다.
/김지영기자 koshaq@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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