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초기에 인공 치하로 들어갔던 서울이 수복된 지 얼마 뒤인 1950년 10월6일, 흔히 '나비 박사'로 불렸던 박물학자 석주명이 서울 시내에서 인민군으로 오인돼 사살됐다. 42세였다. 석주명의 고향은 평양이지만, 그를 학자로 만든 곳은 개성과 제주다. 일본 규슈(九州)의 가고시마(鹿兒島) 고등농림학교를 졸업한 석주명은 1931년부터 11년간 모교인 개성 송도 고보의 박물교사로 있으면서 나비학자로서의 업적과 명성을 쌓았고, 1943년부터 두 해 남짓 경성제대 생약연구소 제주도 시험장의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제주 방언을 연구했다.영국에 본부를 둔 왕립 아시아학회의 의뢰로 집필돼 나비학자로서의 그의 명성을 확고히 한 '조선산 접류 총목록'(1940)에서 보듯, 석주명이 결정적으로 기여한 분야는 나비 분류학이다. 그의 논문 '배추흰나비의 변이곡선'은 생물 분류학의 뛰어난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거니와, 석주명은 개성 지방을 중심으로 수많은 나비를 채집해 관찰하면서 그 때까지 한국산 나비의 종(種)이나 아종(亞種)으로 분류된 나비들이 사실은 단순한 개체 변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밝혀냈고, 그에 따라 동종이명(同種異名) 844개가 제거돼 한국산 나비 분류학의 새 시대가 열렸다.
1949년부터 '제주도 총서' 여섯 권으로 정리돼 나온 석주명의 제주도 연구는 그 출발점이 방언이었거니와, 우리말에 대한 그의 유다른 관심은 굴뚝나비, 수풀알락팔랑나비, 청띠신선나비, 모시나비, 어리표범나비 등 그가 우리말로 직접 지은 나비 이름들의 아름다움으로 열매 맺었다. 석주명의 성 '석'(seok)은 나비 학명에도 남아 있다. 때이른 죽음을 맞은 석주명을 기려 일본인 학자 시로즈(白水隆)는 흑백 알락나비 아종의 학명을 Hestina japonica seoki로 지은 바 있다.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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