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질환으로 우리나라 사람이 가장 많이 앓고 있는 질환인 고혈압은 우리 몸 곳곳을 공격하는 무서운 병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주요 사망원인인 심장병과 뇌졸중의 주요 원인이자, 신장을 망가뜨리고 눈까지 멀게 하는 '침묵의 살인자'이다. 여성의 성기능(이미 남성의 성기능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사실)까지 떨어뜨린다는 최근 연구보고도 있다.문제는 많은 이들, 심지어 의사들조차 고혈압은 술이나 담배를 즐기는 남성들만의 건강문제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고혈압, 남자만의 병인가
2001년 전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30세이상 인구의 고혈압 유병률은 남성이 34.44%, 여성이 26.53%으로 남성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30세 이상 남성의 3분의1, 여성의 4분의1이 앓고 있다는 뜻이다.
여성은 60세 이후부터는 오히려 남성보다 고혈압 유병률이 높다. 60∼69세에서는 남성 56.99%, 여성 57.92%, 70세 이상에서는 남성 52.58% 여성 61.36%로 밝혀졌다.
연세대의대 예방의학과 서일교수는 " 안타깝게도 여성 고혈압 환자들은 자신이 고혈압 인지율도 남성환자보다 낮았으며,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고 있는 비율 역시 남성환자보다 낮았다"고 말했다.
정상 혈압은 120/80미만
가슴에 손을 대면 심장이 쿵쿵 뛰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심장은 수축·이완하면서 운동하는데 수축기(최고)혈압이란 심장이 수축하면서 심장으로부터 뿜어져 나온 피가 동맥에 미치는 최고치 압력을 말하며, 확장기(최저)혈압이란 심장이 이완할 때 동맥에 미치는 최저치 압력을 말한다. 고혈압이란 수축기/확장기 혈압이 140/90㎜Hg(이하 단위 동일)보다 높은 상태를 말한다. 그럼 이보다 낮기만 하면 안심해도 되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2003년 5월 미국고혈압학회는 새로운 고혈압 진단기준(JVC 7차)을 내놓았다. 과거 고혈압 기준(140/90)미만이면 모두 정상으로 통했으나, 새로운 기준은 120/80미만만 정상으로 보고, 120∼139/80∼89에 속한 환자들은 '고혈압 전단계(Prehypertension)'라는 새로운 카테고리에 넣었다. 경희대의대 내과 배종화교수는 "약물치료 대상은 아니지만, 소금섭취 제한, 체중감소, 규칙적인 운동 등 생활요법을 실시해 고혈압을 예방하도록 강력히 권장된다"고 말했다.
수축기 혈압만 높아도 위험
수축기/확장기 혈압은 나란히 움직일 듯 싶지만, 일부 여성환자는 수축기는 160으로 정상보다 높은데, 확장기 혈압은 90정도로 정상을 나타내는 경우가 있다. 과거 이런 고혈압 환자는 위험하지 않다고 분류됐지만, 최근엔 이런 환자도 위험군에 속한다. 수축기 혈압만 높을 경우에도 결국 심근경색이나 뇌졸중의 발생 위험을 높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여성에게 고혈압 일으키나
피임약 모든 여성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일부 여성은 피임약을 복용할 경우 고혈압 증상을 나타낼 수 있다. 특히 과체중, 임신성고혈압, 신장병, 가족력 등을 가진 여성이 피임약을 복용했을 때 고혈압 발생 확률은 더욱 더 높아진다. 배교수는 "장기간 피임약을 복용하면 고혈압 발생률이 2∼3배 높아진다"면서 "5년이상 피임약을 복용한 여성의 약 5%에서 고혈압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나이가 많거나 담배를 피우는 경우, 고혈압 발생률은 더욱 올라간다. 배교수는 "피임약은 체내에 염분을 축적시키고 체중과 혈액량을 증가시켜 심박출량(좌심실 또는 우심실에서 나오는 혈액량)도 올라가게 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임신 중 생기는 고혈압 일부 산모는 임신 전엔 분명 정상이었는데, 혈압이 일시적으로 올라갈 수 있다. 의사들은 임신 20주이전에 생긴 고혈압은 임신 전부터 혈압이 높은 경우이며, 임신 후반에 생기는 고혈압은 임신중독증 때문에 생기는 고혈압(임신성 고혈압)이라고 부른다. 임신성 고혈압은 출산 12주 후쯤이면 대개 저절로 증세가 사라진다. 배교수는 "임신성 고혈압은 다음 임신에서의 재발률이 20∼50%나 돼, 이런 여성은 혈압을 자주 측정, 치료 시기를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임신 전부터 고혈압 증세를 가진 환자들이다. 이런 여성은 임신 초기 수개월간 혈압강하제를 복용해야 하는데, 태아에게 안전한 약을 선택해야 한다. 예를 들어 베타차단제, 하이드랄라진, 라베탈론은 안전한 약물인 반면, ACE차단제, 이뇨제, ARB제제 등은 자궁으로 가는 혈류를 감소시키고, 태아 사망에까지 이르게 할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임신중 고혈압이 생기는 원인에 대해 배교수는 "혈류장애로 태반혈관이 일부 손상되면서 산소 부족증세를 일으키게 되며, 손상된 태반 혈관에선 혈압 상승 물질까지 분비하게 된다"면서 "게다가 임신부들은 대개 교감신경계가 항진돼 있는데, 이런 증세와 중복되면서 과도한 흥분상태를 나타내며 혈압상승을 일으키게 된다"고 분석했다.
폐경기 이후 고혈압 30∼40대 정상 혈압을 유지했던 여성이라도, 50대가 넘어서면 혈압체크를 정규적으로 해야 한다. 폐경기 여성은 동맥경화증 위험이 높아지고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가 올라가게 되는데, 이로 인해 고혈압 발생 확률이 높아지게 된다. 역으로 고혈압 흡연 당뇨 비만 등은 동맥경화증의 위험요소이기도 하다.
40∼49세에서는 여성의 고혈압은 10명 가운데 1.5명(2001년 국민영양조사)이지만 남자는 약 3명으로 두 배 가까이 남자가 많다. 그러나 50∼59세가 되면 고혈압 유병률은 남자 39.98%, 여자 33.29%로 여성 환자 수가 갑자기 남성 수준에 육박하고 60대 이후부터는 여성환자의 유병률이 오히려 높아진다. 50세 이후 에스트로겐 분비가 급격하게 감소하면서, 심혈관질환이나 고혈압 발생 위험성도 증가되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를 예방하기 위해 호르몬 치료가 적극 권장됐으나, 2002년 미국 보고서에서 심장병예방 효과에 대한 대규모 임상시험 보고서(HET Study) 이후 호르몬 치료는 급성기 갱년기 증상 완화를 위해서 처방될 뿐, 심혈관질환 예방을 위해선 거의 처방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혈압 어떻게 낮출까
고혈압은 스트레스 질환이라 여기는 경우도 많다. 감정적으로 흥분하거나 화가 났을 때 혈압이 올라가기 때문인데, 대한고혈압학회가 만든 고혈압 예방생활 수칙에도 '스트레스를 피하고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라'는 항목이 들어있을 정도이다. 한양대의대 내과 이방헌교수는 "고혈압 환자들은 음식을 싱겁게 골고루 먹고, 살이 찌지 않도록 해야 하며, 매일 30분이상 운동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심하지 않은 고혈압일 경우 규칙적인 운동 식생활 개선 체중감량 가운데 한가지만 실천해도 극적으로 혈압을 낮출 수 있다. 의사들은 '고혈압 전단계'에 속하는 환자에게는 무조건 이러한 생활요법부터 실시하도록 권하지만, 혈압이 정상보다 20/10㎜Hg 높은 경우에는 처음부터 혈압강하제를 처방하기도 한다. 배교수는 "고혈압 약은 장기간 복용해야 하기 때문에 한가지 약보다 두가지 이상 병용하는 것이 부작용도 줄이고 효과면에서도 좋다"면서 "그 중 한가지는 이뇨제를 선택한다"고 말했다.
송영주 yjsong@hk.co.kr
고혈압 환자를 치료하다보면 한동안 잘 치료받던 환자가 수개월 내지 수년간 병원에 오지 않다가 혈압이 매우 높아지거나 합병증이 발생 후 다시 찾아오는 경우를 흔히 경험한다. 특히 여성 환자들을 보면서 느낀 점은 열심히 치료를 하는 환자도 많지만 강압제를 불규칙하게 복용하거나 진료를 바쁘다는 이유로 미루는 예가 많다는 것이다. 많은 여성들이 한동안 강압제 복용을 중단하고 과학적 근거가 없는 민간요법에 의지하기도 한다.
치료를 하지 않거나 중단하는 여성들은 고혈압으로 인한 특별한 증상이 없다고 주장하거나, 심지어 강압제 복용 후 정상 혈압을 회복, 병이 완쾌돼 더 이상 복용할 필요가 없다고 우기기도 한다. 그러나 고혈압은 강압제를 중단하면 혈압이 다시 올라가므로 증상이 없더라도 계속 복용해야만 무서운 합병증을 예방할 수 있다.
특히 60대 이후 여성 환자들은 협심증이나 당뇨병과 같은 여러가지 동반질환을 가지고 있어, 합병증 발생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고혈압 치료를 더욱 철저히 받아야만 한다.
고혈압 치료의 목표는 높은 혈압을 일시적으로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늘 정상 혈압을 유지하는 것라는 사실을 명심했으면 한다.
배 종 화 경희대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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