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는 국민배우라는 말이 없지만 안성기씨를 보면 그 의미를 알 것 같다. 실제론 얼마나 점잖은지는 모르지만…(웃음). 꼭 형님 같은 사람이다." (야쿠쇼 고지) "국민배우라는 말은 어쨌거나 부담스럽다. 안 그러면 실망할 것 같은 족쇄처럼. 물론 그 동안 잘 살아왔다는 평가라는 느낌도 든다. 보람과 속박을 함께 느낀다." (안성기)두 사람은 같은 생일(1월1일), 같은 혈액형(AB)에 겸손하게 노력하는 모습까지 같아 국적을 달리한 '도플 갱어'(분신)처럼 보이는 배우 안성기(51)와 일본 배우 야쿠쇼 고지(役所廣司47)가 제8회 부산국제영화제 특별행사 '안성기 야쿠쇼 고지를 만나다'에서 대담했다. 똑 같이 평상복 차림으로 멋을 낸 두 사람은 오랜 친구처럼 예의와 유머를 담은 대화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살려 나갔다.
두 사람의 인연은 1996년 일본 오구리 고헤이 감독의 '잠자는 남자'에 함께 출연하면서부터. 안성기는 영화에서 식물인간으로, 야쿠쇼 고지는 그의 친구로 나왔다. "영화에서는 미동도 하지 않는 식물인간 역을 맡았는데, 한국 관객이 '잠만 자는 역할 하러 일본 영화에 출연했느냐'고 비난할까 봐 두려운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잠만 잔 것은 아니다. 야쿠쇼가 '다구치상'하고 부르면 보일 듯 말듯 미세한 움직임을 보였다. 두 나라 문화 교류에 꼭 필요한 영화였다."안성기의 말을 받아 야쿠쇼는 "바로 그런 점이 안성기씨를 국민배우로 만드는 요인"이라고 추켜 세웠다.
'쉘 위 댄스''우나기' 등으로 '일본 여성이 가장 안기고 싶어 하는 남자배우'에 꼽힌 적도 있는 야쿠쇼는 "그런 일을 잊은 지 오래"라며 "앞으로 그런 기회가 다시 온다고 해도 국민배우의 꿈을 꾸고 있으니 착실하게 가정을 지키겠다"고 웃었다. 안성기는 "나는 그런 로맨틱한 칭호를 받아본 적이 없다"고 장난기 섞인 부러움을 표했다.
'야쿠쇼'는 관청이란 뜻으로 고교 졸업 후 4년 간 도쿄(東京)도에 근무한 이력을 듣고 연예계 선배가 붙여 준 성(姓)이다. 그는 극단과 TV를 거쳐 85년 '담포포'(민들레)로 영화에 데뷔했다. 4세 때 아역으로 데뷔, 47년의 경력을 자랑하는 안성기에 비하면 까마득한 후배지만 두 사람의 대화는 격의가 없었다. 안성기는 "야쿠쇼를 보면 마치 한국말을 할 것 같은 친근한 인상이다. 영화를 함께 촬영하면서도 많은 얘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그게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야쿠쇼는 "일본에서 우리 두 사람을 주인공으로 생각하고 기획 중인 영화 시나리오가 있는데, 꼭 함께 출연하고 싶다"며 안씨에 대한 애정을 강조했다. 그는 또 "한국의 스크린쿼터, 예술영화지원 같은 제도가 너무 부럽다"며 한국 영화계에 대한 부러움을 표하기도 했다.
/부산= 박은주기자 jupe@hk.co.kr
사진 김현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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