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전혀 뜻하지 않은 책을 읽게 된다. 책 읽는 목적이 즐거움만이 아닐진대 무슨 책인들 읽지 못할 이유야 없지만, 이 책은 내게는 아주 멀게 느껴졌다. 노년을 어떻게 지내는가에 관심을 가질 만큼 나이 들지도 여유 있지도 않은 나로서는 '우아한 노년'이라는 제목부터가 별로 관심이 가지 않았다.표지에 실린 나이 든 수녀님의 모습이나 부제 '더 오래, 더 건강하게, 더 의미있게 사는 삶에 관한 수녀들의 가르침'에도 크게 끌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이 인간의 생물학적 노화에 관한, 특히 치매와 알츠하이머 병에 관한 역학(疫學) 조사를 다룬 책이라는 소개에 흥미가 당겨 책을 집어 들게 되었다.
처음의 낯설음과는 반대로 책을 몇 장 넘기지 않아 나는 흠뻑 빠져들고 말았다. "모름지기 책이란 이렇게 써야 하는 것이야"하고 감탄을 연발하면서.
저자 데이비드 스노든 박사는 알츠하이머 병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이자 역학 전공자로서 이 책에서 자신의 일과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역학은 한때 난치병으로 여겨졌던 말라리아나 괴혈병 같은 질병을 치료하는 데 중요한 공헌을 했다.
이 책은 그의 필생의 연구에 대한 보고서이자 삶의 기록이다. 학문적인 책이라 어렵고 딱딱하리라는 선입견은 어릴 적 용돈 벌이로 닭을 키워본 경험을 들려주는 것으로 시작해서 역학 이야기로 넘어가는 식의 매끄러운 글솜씨 덕분에 눈 녹듯 사라진다. 삶과 이야기가 어우러진 멋진 학술 보고서인 셈이다.
그는 매우 개인적인 이야기까지 솔직하게 털어놓고 있다. 연구비를 타 내기 위해 고민하고, 교수로서 안정적 직위를 얻고 싶어 안달하고, 연구 실적을 인정 받아 유명해지고 돈도 벌게 되자 좋아한다. 어찌 보면 극히 속물적인 모습이다. 이처럼 수많은 에피소드를 통해 자연스럽게 자신의 연구 결과를 독자에게 전달한다. 연구 대상인 수녀님들과 맺는 인간 관계의 따뜻함 또한 치밀하고 논리적인 학술 연구를 부드럽게 풀어낸다.
이 책을 읽으며 과학 연구를 비롯한 아주 전문적인 작업도 친근감 있게 녹여낼 수 있음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의 어떤 일들도 재미있을 수 있는 것이다. 심오한 학문이라 해서 대중에게 쉽게 다가갈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제목과 부제가 내용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듯하고, 편집 디자인이 좀 더 예뻤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장인용·지호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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