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또한 심연을 사랑하는가. 소나무처럼?/ 소나무는 그 뿌리를 움켜잡는다. 암벽마저도…/ 그가 더 높은 곳과 빛을 향해 솟아오르면 오를수록/ 그의 뿌리는 땅 속 더 깊이 내리박힌다./ 어둠과 심연 그 악(惡) 속으로'화가 김명숙씨의 그림은 니체의 이 말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한편으로는 땅 속으로 뿌리박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빛을 향해 솟아오르는 생명의 뿌리다. 사비나미술관이 김명숙 초대전을 9월 24일 시작, 11월 12일까지 연다.
김씨 작품을 대하면서 드는 첫 느낌은 '그린다'는 미술의 처음이자 마지막 의미를 실감하게 된다는 점이다. 도대체 몇번이나 붓이 갔을까 하는 의문이 자연스레 들 정도로 그의 그림에서는 수많은 칠함, 긁어냄, 다시 덧칠함의 고된 노동의 과정이 그대로 느껴진다. 수많은 선의 흔적이 빛과 어둠을 만들어내고, 형체를 두드러지게 했다가 또 지우고 있다. 가장 어두운 것이 가장 밝은 것을 돋보이게 한다는 말처럼 심연처럼 어두운 화면은 또한 그 속에 환한 빛을 숨겨두고 있다. 스크래치에 의해 이뤄진 형태들은 견고한 실체이기보다는 작가가 표현해낸 주관적 이미지들인데, 화면에서 전체적으로 받는 느낌은 어떤 전율 같은 것이다. 예술이라는 멍에를 짊어진 이들의 고뇌가 전달되기도 한다.
캔버스가 아닌 종이에 그린다는 것도 김씨 그림의 또 다른 특징이다. 초창기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캔버스가 아닌 종이를 선택했다지만 그는 종이라는 매체를 스스로와 일치시켜 육화해버렸다. 드로잉을 한 뒤 아크릴을 올리고 다시 크레용으로 무수한 선들을 그려나가는 과정은 그대로 자신의 신체를 작품 속에 투영하는 과정이다.
전시에는 2001년 이후 '숲' 시리즈 12점, '인물' 시리즈 9점, '동물' 드로잉 3점이 나온다. 대부분 2m가 넘는 대작들이다. 사비나미술관이 개인전으로 50일간의 장기 전시를 하는 것도 그만큼 보여줄 것이 많다는 의욕을 드러낸 것이다. (02)736―4371
/하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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