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지도부 일부가 전날 '책임총리제'의 총선 전 조기 이행을 주장한 데 이어 원내 제1당인 한나라당이 1일 노무현 대통령에게 대선공약 준수를 촉구하면서 정치권에 권력분점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양당은 책임총리제를 고리로 내심 개헌을 공론화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와 통합신당이 이에 부정적이고, 양당 내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려 여론의 향배가 주목된다.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노무현 대통령이 민생 및 국정운영에 전념해야 할 때에 또 다시 불필요한 논쟁과 정치공세를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한나라당 홍사덕 총무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책임총리제는 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라며 "정치가 신뢰 속에서 발전하려면 대통령이 약속을 파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책임총리제 수용을 촉구했다. 그는 또 "책임총리제는 총리가 내각의 임면권을 장악하는 제도이기 때문에 개헌이 전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마치 개헌을 통해 책임총리제를 시행하자는 뜻으로 들린다.
그러나 이 발언은 꼭 책임총리제를 해야 한다는 것 보다는, 이번 논란을 개헌논의의 물꼬를 트는 지렛대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렇게 해서 개헌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면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 등으로까지 선택지가 넓어질 것이라는 판단인 셈이다. 다른 고위 당직자도 "내각제 개헌은 국민 정서 때문에 아직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며 "그러나 책임총리제는 똑같이 개헌이 필요하지만, 여론이 그리 나쁘지 않은 만큼 개헌의 돌파구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소장파를 중심으로 한 당내 반발은 여전하다. 홍준표 의원은 "현행 헌법 아래서도 각료 제청 및 해임권을 보장하는 등 총리에게 힘을 실어주면 책임총리제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정균환 원내총무는 이날 SBS 라디오에 출연, "책임총리제는 노 대통령의 대선공약으로 지금의 국정 혼란을 막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제도적 장치"라면서 책임총리제의 조기 이행을 거듭 촉구했다. 강운태 비대위 간사도 "책임총리제는 우리의 대선 공약인데다, 노 대통령도 조건부로 총선 후 개헌 용의가 있다고 말했던 만큼 분권형 대통령제 실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총선 전 (분권형) 개헌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총선 공약으로 개헌을 이슈화시킬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조순형 비대위원장은 "책임총리제는 의석비율을 반영, 제1당이 총리를 지명하자는 취지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얘기"라고 말했다. 김영환 정책위의장도 "책임총리제가 노 대통령의 탈당과 국정혼선에 대한 재신임론의 형태로 거론돼 자칫 감정적인 대응으로 비쳐질 수 있다"며 '시기상조론'을 폈다. 추미애 의원 역시 "책임총리제는 노 대통령의 공약이지만 논의를 더 모아야 한다"고 밝혔다.
통합신당 에선 지도부가 일제히 나서 "책임총리제는 기득권 세력의 야합에 의한 쿠데타적 발상"이라고 비난했다. 김근태 원내대표는 "책임총리제는 내각제의 다른 판본으로, 노무현 정권의 국정운영을 흔들고자 하는 정략적 의도가 있는지 답해야 한다"고 공격했다. 김원기 창당주비위원장도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함께 정권을 뿌리째 뒤흔들려는 음모적 발상"이라며 "노무현 정권을 일찍부터 식물정권으로 만들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주장했다.
/유성식기자 ssyoo@hk.co.kr
박정철기자 parkjc@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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