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의 또 다른 상징은 모악산(793m)이다. 만경평야에서 내륙쪽으로 우뚝 솟은 산. 고찰인 금산사로도 대표되지만, 산 자체가 호남 미륵신앙의 터전이다. 민초들의 꿈과 한이 응집된 곳이란 뜻이다. 그 때문에 계룡산에 버금가는 신흥종교의 발상지이기도 하다.모악(母岳)이란 이름은 산 정상에 있는 어미가 어린아이를 품에 안은 듯한 모습의 바위에서 따왔다고 전한다. 그 이름처럼 곡창지대인 만경평야를 지키고 서 있는 품새인데다 풍수지리적으로 강렬한 에너지를 내뿜는 명당 자리라 한다. 전주 김씨의 시조묘가 모악산 대명당에 자리잡아, 김일성 주석이 49년 동안 절대 권력을 누리다 그 지기(地氣)가 다하는 1994년 이전 급사하거나 권력에 밀려날 것이라는 육관도사의 예언이 맞아떨어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모악산에서는 뭐라해도 금산사가 대표적 사찰. 백제시대 창건됐다 통일신라시대 백제유민의 한을 담아 766년 진표율사에 의해 대가람으로 중창된 곳이다. 국보 62호인 미륵전을 비롯해 대적광전, 5층석탑, 6각다층석탑 등 보물 9점이 있어 꼼꼼히 둘러봐야한다. 미륵전에서 후백제의 견훤이 석달동안 유폐된 적이 있어, 재작년 TV 드라마 '태조왕건'으로 더욱 유명세를 치렀다.
금산사 인근의 귀신사(歸信寺)도 꼭 둘러봐야할 곳이다. 원래는 의상대사가 창건한 화엄10찰의 하나로 금산사를 말사로 거느린 대사찰이었지만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됐다가 임란 후 중창됐다. 지금은 민가 틈에 끼어 입구도 찾기 힘들 정도로 퇴락한 사찰이긴 하지만, 특별한 유물이 눈길을 끈다. 사자가 남근석을 등에 진 형상의 돌상이다. 풍수지리적으로 터의 기를 제압하기 위해 세웠다고 전하는데, 조선 후기 민가에 내려와 민간신앙과 융합된 불교의 모습을 보여준다.
모악산으로 들어가는 입구인 금평저수지 맞은편에는 증산법종교 본부가 자리잡고 있다. 한말 혼란기 때 모악산에서 증산도의 교조인 강증산이 도를 깨쳤고, 산기슭 구릿골에서 한약방을 열고 포교활동에 나섰던 것. 그 때문에 모악산 기슭에는 강증산을 모시는 증산도의 여러 종파가 모여 있고, 증산도법종교 본부에는 강증산의 유해가 모셔져있다. 강증산은 숨을 거두며 "자신을 보려거든 금산사 미륵전으로 오라"고 했다고 전한다.
또 금산사 입구 부근에는 1908년 한옥식으로 지어진 초대교회인 금산교회가 자리잡고 있다. 각종 종교의 사원이 밀집한 것은 모악산의 영험한 기운 때문일까. 그 보다는 이 곳이 바로 국내 최대의 곡창지대, 다른 말로 농투성이들의 피와 땀이 절절히 배어있는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김제시청 문화관광담당 (063) 540―3224
/김제=글·사진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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