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이형기의 '洛花')노무현 대통령의 민주당 탈당을 보면서 갑자기 이 시가 생각이 난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이 과연 적절한 때인가는 하는 의문은 남지만 그래도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그들의 관계가 이미 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서로에 대한 고운 정은 고사하고 미운 정마저 바닥난 마당에 그들의 결별은 오히려 만시지탄의 안타까움으로 다가온다.
그런 점에서 보면 노 대통령의 탈당을 두고 민주당 당직자가 뱉어내는 말들은 듣기 민망하다. 적어도 그들의 관계는 배신감이 들 정도로 애정어린 사이는 아니었지 않는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다른 길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끼리, 마치 아무런 잘못도 없었는데 버림받았다는 식의 언사는 오히려 당혹스러울 뿐이다.
성숙한 사람들이라면 우아하게 헤어질 줄 알리라. 떠날 수밖에 없는 서로의 입장을 이해해 주면서 함께 한 고난의 시간을 추억하며, 서로의 안녕을 기원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마도 우리나라 정치인들에게 이별의 미학을 기대하는 것은 참으로 난망한 일일 것이다.
헤어질 사람들은 헤어져야 한다. 우리 학계와 언론이 한국의 정치발전을 위해 간단없이 강변해왔듯이 이제 우리의 정당정치도 지역주의 사슬에서 벗어나 이념과 정책에 따라 새롭게 재편되어야 한다. 이제 남은 문제는 '이별의 의식'이 아니라 '결별 이후의 삶'이다.
노 대통령은 청와대의 발표대로 당분간 초당적 국정운영을 하게 되든 혹은 한나라당의 조언(?)대로 자신과 코드가 맞는 통합신당에 합류하든 국회를 장악하지 못한 약체 대통령으로서의 한계와 좌절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감사원장에 대한 국회인준거부는 시작에 불과할지 모른다. 어떤 선택을 하든 밝은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청와대의 고민일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의 곤혹 만큼이나 한국정치의 전망이 흐린 것은 아니다. 우선 초당적 국정운영은 대통령이나 정부관료들에게 매우 피곤한 일이겠지만 행정부가 국회를 상전으로 모시는 기풍을 만들어나가는 시금석으로 삼을 만하다. 정부와 집권 다수당이 힘으로 밀어붙이는 식의 일방주의 정치에서 벗어나 국회가 살아 움직이는 정치를 열어가는 소중한 계기가 될 수 있다.
무당적 상태든 여소야대 정국이든 대통령과 정당의 관계도 국정의 동반자라는 관점에서 재정립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대통령도 야당을 무시할 수 없고 야당도 무작정 '노무현 때리기'로 일관할 수 없다. 사안별로 정당간 협력과 경쟁이 교차하는 선진화한 의회정치를 구현하는 데 호기가 되는 셈이다.
그렇다고 노 대통령이 무한정 '정치적 독신'으로 지내는 일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 무당파의 삶이 정치적으로 불편해서가 아니라, 책임정치의 기본을 살리기 위해서 대통령은 당적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정책과 이념, 그리고 정치행태에 따라 새로운 균열을 만들어내고 있는 오늘의 정치지형은 기대할 만하다. 한국 정당사에서 정략적인 합종연횡은 많았지만 개혁적 정치세력이 기존 정당에서 이탈하여 개혁정당운동을 펼친 사례는 없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이 언제 합류하든 신당이 노무현당이라는 혐의를 완전히 벗어 던지기 어려울 것이다. 일종의 운명공동체적 관계라고나 할까. 이러한 상황이 양쪽 모두에게 곤혹스러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운신하기에 따라서는 3김 정치와 지역주의로 언표되는 '87년 체제'를 종식시키고 새로운 정치의 시대를 열어갈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적어도 이러한 점이 한국정치에서 발견할 수 있는 희망의 징표가 아니겠는가.
최 영 진 중앙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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