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해사 뒷편 전봉산 정상에서 바라본 일몰은 참 아름답고, 눈부셨습니다. 낙조가 갯벌에 반사되면서, 일반적인 바다 일몰과는 또 다른 분위기가 느껴지더군요. 반대편으로는 드넓은 황금 들녘이 물들고 있고요. 아주 근사한, 연인과 왔다면, 무척 낭만적이었을 분위기였죠. 마침 중년의 남녀 한 쌍이 일몰을 같이 구경했습니다.제가 나중에 다른 좌석에서 낙조 얘기를 하다 무심결에 "중년 부부도 같이 봤다"고 하자, 시 관계자가 대뜸 "어, 부부로 보였어요? 에이, 아닌 것 같던데"라며 슬쩍 웃더군요. 그러고 보니 남자는 여자에게 말을 놓았지만, 여자는 비정상적으로 말을 깍듯이 높였던 기억이 나더군요. 그러니까, '부적절한 관계' 같아 보인 거죠. 여자가 남자에게 해돋이 얘기를 했던 걸로 봐서 아마도 그들은 근처에서 자고 갔을지 모릅니다.
지난 주에 강원 평창군 월정사 전나무숲을 구경하러 갔을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죠. 그곳 역시 시끌벅적한 유명 관광지가 아니라 은은한 분위기의, 아주 고혹적인 산책길이죠. 중년 남녀 한 쌍이 저희 일행보다 몇걸음 앞서 산책하고 있었죠. 동행했던 일행이 "업무상 만나는 관계에서 발전한 커플이 아닐까" 추측하더군요. 그들은 매우 세련되고 깔끔한 복장이었고, 남자와 여자의 나이 차가 꽤 있는 듯 보였죠. "저 사람들 담긴 장면을 사진 찍어서 신문에 내면, 완전 들통나겠지?" "야 그러다 잘못하면, 명예훼손 걸리는 거 아냐?" 여행지 사진의 경우 풍경에 사람들이 담겨야 딱딱하지 않기 때문에 여행객을 함께 찍곤 합니다. 따로 동의를 구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다 불륜 현장이 들통나는 것 아니냐는 농담이었던 거죠.
망해사에도 드라이브 나온 중년 남녀 몇 커플이 있었습니다. 그들 역시 부적절한 관계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그들이 실제 부부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실제 부부로 보이지 않았던 까닭이 무엇일까요. 중년 부부와 낭만적 분위기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잘못된 편견 때문인지, 아니면 낭만적 여행지란, 원래 그런 곳이기 때문인지, 잘 모르겠군요.
/송용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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