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신당의 출현으로 원내정치는 '신4당체제'로 운영되기 시작하였다. 통합신당은 지역주의 타파와 정치개혁을 기치로 내세우고 민주당에서 뛰쳐나왔으나, 감사원장 임명동의안의 부결은 통합신당의 앞길이 순탄하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바로 얼마 전 노무현 대통령을 만들기 위해 힘을 모았던 '동지'들이 이제 '원수'가 되어 싸우고 있다. 5·18 민주화운동을 진압한 세력이 조직한 옛 민정당의 핵심인사들이 현재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한나라당과 '빛 고을' 광주의 적손(嫡孫)임을 자처하는 민주당이 '대동단결'하고 있는 모습은 정치권의 염량 세태를 새삼 느끼게 한다. 적과 동지가 순식간에 뒤바뀌는 정치현실을 바라보며 현기증을 느끼지만, 몇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있다.
먼저 민주당은 통합신당을 '분열주의자'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최소한 지난 대선에서 자기 당의 경선으로 공식 확정된 대통령 후보를 인정하기는커녕 다른 당의 후보로의 단일화를 추구했던 사람, 당내 논의와 전당대회를 통하여 통합신당을 만들자는 논의를 폭력적으로 무산시킨 사람, 그리고 김대중 정부 아래에서 발생한 각종 권력형 비리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이러한 말을 할 자격이 없다. 통합신당을 비판할 자격은 민주당내 절차와 결정을 준수하고 존중했던 사람, 권력형 비리와 절연하며 정치개혁을 추구했던 사람들에게만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통합신당에 대한 원망은 호남정서의 재가동이 아니라 통합신당과의 개혁경쟁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통합신당은 현재의 민주당이 '구태정치'를 혁파하는 과제를 도저히 수행할 수 없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통합신당 산하에 모여드는 사람들의 면면 중에는 현재 민주당 내의 낡은 인사 못지않은 낡은 인사가 엄연히 있다. 그리고 지역주의 청산과 정치개혁은 시대적 과제이지만, 통합신당이 이 과제를 얼마나 성취할 것인가는 아직 미지수이다. 만약 통합신당이 제 살을 도려내는 정치개혁을 추구하지 않거나, 호남을 포기하고 부산·경남을 대신 선택하는 선거전술을 구사한다면 통합신당에 대한 비판은 더욱 가중될 것이다. 스스로 소수파가 되는 험로를 선택한 '정신적 여당'의 성공 여부는 자신의 초심을 제대로 지켜내는가에 달려 있다.
여당의 분열 앞에서 야당인 한나라당은 표정관리가 어려울 것이다. 이미 한나라당은 자신만의 의석수로도 제1당인데, 이제 대통령과 통합신당에 대한 적의에 불타는 민주당과의 공조도 가능한 상황이니 이제 무슨 일인들 못할 것인가. 과거에 그러하였듯이 청와대에 대한 무차별 공격과 지역주의를 적절히 활용하면 제1당의 지위는 유지될 것이고, 내친 김에 대통령 탄핵이나 내각제 개헌도 해버릴 수 있을 것이다. 내각제 개헌을 애타게 바라는 자민련이 적극 도와줄 것 아닌가.
그러나 한나라당은 원내 제1당의 책임이 무엇인지 심각히 생각해야 할 것이다. 청와대가 추구하는 일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으로 발목을 잡으면서, 청와대가 일을 못한다고 비난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그리고 당내 소장파의 개혁요구를 계속 치기의 발로로 매도한다면 한나라당은 '수구노인당'으로 전락할 것이다. 한나라당이 책임정치를 구현해야 하는 원내 제1당임을 자각하고, '수구'에서 '보수'로의 변신을 이루어내기를 기대한다.
이유야 무엇이든 간에 우리 앞에 있는 원내 '신4당체제'에는 두 갈래 길이 있다. 즉, 지역주의와 정략에 따른 이합집산인가, 아니면 정치개혁을 위한 선의의 경쟁인가이다. 국민의 희망이 어디에 있는가는 정치권도 익히 알고 있을 것이나, 상황이 그리 낙관적이지는 않다. 언제 정치권이 국민에게 희망을 주었던가. 시민사회운동이 정치권에 대하여 더욱 매서운 비판을 가하며 정치권을 견인해야 할 때이다.
조 국 서울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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