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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길위의 이야기/누워서 존댓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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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길위의 이야기/누워서 존댓말하기

입력
2003.10.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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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가 등장하면서 사실상 편지의 시대는 끝났다고 생각한 사람이 많았다. 편지는 추억의 소품이 되었다. 연애도 전화로 하고 부모님 가스보일러도 전화로 놓고, 죽네 사네 싸움도 전화로 했다. 편지는 전방의 군인들이나 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그러나 이메일이 등장하자 인류는 갑자기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편지를 쓰게 되었다. 편지 문화가 돌아온 것이다. 말로 해도 될 일을 다시 문자로 하기 시작했다. 수신인을 쓰고 제목을 적고 날씨로 서두를 꺼내고 안녕히 계시라고 인사도 하고 끝에는 날짜도 적는다. 전화와 이메일의 시대를 거치면서 사람들은 말이라는 게 참 피곤한 매체라는 것을 새삼 깨닫고 있다.

고종 황제가 전화를 하면 신하들이 의관을 정제한 후 절하고 나아가 엎드려 수화기를 들었다는 얘기를 들으면 사람들은 웃지만, 부모님이나 사장님 전화를 침대에 누워서 받는 사람은 아직도 드물다. 자기도 모르게 똑바로 앉게 된다. 수화기에 대고 절하는 사람도 있다. 안 보이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렇다. 바로 말의 힘이다. 말은 그런 식으로 우리의 행동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한 번 누워서 존댓말을 해 보시라. 무척 어렵다.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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