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천체 물리학자가 학문 연구 이외의 과도한 업무 등에서 벗어나기 위해 결국 서울대 교수직을 사임했다.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박창범(43·사진·천문학) 교수는 8월말 오랜 번민 끝에 관악산 기슭의 연구실을 깨끗이 비웠다. 그는 9월1일자로 고등과학원(KIAS) 물리학부로 자리를 옮겼다.
박 교수는 황준묵(수학부) 이기명(물리학부) 강석진(수학부) 교수에 이어 고등과학원으로 이직한 네 번째 서울대 교수로 기록됐다. 동료 교수들은 그의 이직에 큰 충격을 받았다.
92년 2월 서울대 교수로 부임한 박 교수는 손꼽히는 세계 최고 수준의 이론 천체물리학자. 서울대 천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유학하던 1990년 우주 거대 구조의 진화를 규명하기 위한 그의 빅뱅 모의실험 결과는 실제 우주의 모습과 일치해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이 연구결과를 머릿기사로 소개하는 등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98년 학술논문의 국제적 수준을 평가하는 잣대인 국제과학논문인용목록(SCI) 지수 조사결과 그의 논문은 서울대 물리화학 분야 논문 가운데 최다 인용횟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박 교수가 서울대를 떠난 것은 좀 더 연구다운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서. 그의 한 제자는 "교수님께서 가끔 '사무 처리가 너무 많아 연구에 집중을 못하겠다'는 얘기를 하셨다"고 말했다.
서울대 천문학 전공 주임인 이명균 교수도 "학과 차원에서도 큰 손실이라 여러 교수님들이 이직을 극구 만류했지만 그의 연구욕까지 막을 수 없었다"고 탄식했다.
서울대의 구조적 문제도 이직의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두뇌한국(BK) 21' 사업 시행 이후 사실상 전공이 사라지자 학생 지도에 어려움이 컸다.
박 교수는 "학부생 가운데 상당수가 대학원에 진학해야 하는데 학부교육을 제대로 받은 학생수가 크게 줄었다"며 "학부에 전공이 있는데도 정작 대학원에는 전공이 없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탄했다. 서울대 재직 기간 중 연구를 위한 경제적 지원도 넉넉하지 않았다. 그는 "BK 21 1년 연구비는 학생 지원금 지급에 모두 투입되고 있는 등 사실상 큰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서울대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민교협) 활동을 했던 박 교수는 5년째 복직 투쟁중인 김민수 전 미대 교수에 대한 학교측의 무성의함에도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김 전 교수 복직운동에 앞장섰던 그는 "무엇보다 천막 농성중인 김 교수를 두고 떠나게 돼 가장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준택기자 nag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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