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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 만경평야/가슴 가득 충만함이 밀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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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 만경평야/가슴 가득 충만함이 밀려든다

입력
2003.10.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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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 수해가 나더라도 이곳만은 비켜간다지요." 유성열 김제시 지평선축제팀장의 말이 허튼 소리는 아닌 듯 싶었다. 남쪽을 할퀸 태풍 매미의 기승도 이 너른 들녘을 건드리진 못했다. 국내 최대의 곡창지대인 김제의 만경평야. 국내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을 볼 수 있다는 그 드넓은 들녘이 한껏 무르익었다. 익어가는 벼이삭 만큼 들녘의 빛깔도 농염해졌다. 가을은 자연이 빚어내는 황금빛 숙성의 계절이다. 2일부터 5일, 이 들녘 지평선에선 수확을 준비하는 흥겨움이 울려퍼진다. 이 곡창지대의 풍요를 전국에 알린 지평선 축제가 올해로 5회째를 맞았다.코스모스 어울린 황금들녘

서해안 고속도로 서김제 인터체인지에서 빠져 나오면, 김제의 확 트인 들녘이 시원하게 펼쳐지고, '지평선 축제'를 알리는 허수아비들이 이방인을 반갑게 맞는다.

우선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가을의 전령사 코스모스 꽃길. 김제시 진봉면, 광활면으로 이어지는 29번 국도, 702번, 711번 지방도 양 옆으로는 진홍, 분홍, 하얀 빛의 코스모스가 해맑게 하늘거리며 끝없이 이어진다. 김제시가 지평선 축제를 위해 4년전부터 조성해온 것으로 36㎞에 이르는 국내 최대의 코스모스 드라이브 코스다. 지난 달 28일에는 이 길에서 전국 마라톤 대회도 열려 마라토너들의 사랑도 한껏 받았다.

코스모스 너머로 펼쳐진 정겨운 우리의 가을 들녘, 그 황금빛의 물결이 아스라하다. 코스모스와 어울린 모습이 가을의 운치를 더한다. 잠깐 차를 멈춰 들녘에 나서면, 가을 햇살에 황토빛 내음이 물씬 풍긴다.

농경문화의 상징, 벽골제

만경평야, 김제시에 있어서 김제 평야로도 불리는 이곳. 노령산맥의 마지막 자락인 모악산을 방패 삼고, 북으로 만경강, 남으로 동진강을 젖줄 삼아 예로부터 한반도를 먹여 살렸던 우리 농경문화의 터전이다. 그 땅이 얼마나 넓으면, 광활(廣闊)면이니, 일만 이랑이란 뜻의 만경(萬頃)리니 하는 이름이 생겼을까.

그 상징은 교과서에서 익히 들었던 벽골제에 있다. 백제 비류왕 때(서기 330년) 축조된 동양 최고(最古)이자 당대 최대의 저수지. 이를 쌓기 위해 동원된 백제 일꾼들이 짚신에 묻은 흙을 털어 모은 것이 산이 되었다는 '신털미산'까지 있다. 축조 당시 둘레가 140㎞. 벽골제가 마르면 나라에 흉년이 들었다고 할 만큼, 우리 농삿일의 큰 물줄기였다.

29번 국도를 타고 김제 도심을 조금 지나면 그 모습을 드러내지만 그 옛날의 저수지는 모두 메워져 논이나 주택지로 변했고, 지금은 장생거, 장경거라는 두 수문과 3㎞ 남짓한 제방만이 남아 있다. 명성에 비해 볼 게 없다고 실망할지도 모른다. 그런 헛헛한 마음을 벽골제 수리민속유물전시관(063-540-3225)에서 달랠 수 있다. 가래, 보습, 지게 등 잊혀져가는 우리 농기구에서부터 농경문화의 역사까지 한 눈에 잡힌다. 우리 뿌리에 대한 근원적 향수를 확인할 수 있다. 2∼5일까지 지평선 축제기간 벽골제에서 연날리기, 메뚜기잡기체험, 우마차 여행 등의 행사가 마련돼 그 향수를 몸으로 직접 체험할 수 있다.

벽골제 인근에는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을 기념하는 아리랑 문학관이 자리잡고 있다. 곡창지대 김제가 일제 강점기 쌀 수탈과 착취의 한복판에 있었던 것도 당연했다. 소설 아리랑의 주무대가 그래서 김제였다. 죽산면에는 소설 속 일본인이자 실제 인물이었던 하시모토의 관리사무실이 그대로 남아있다.

갯벌과 노을

지평선만이 아니다. 만경강과 동진강이 밀고 내려온 토사는 바다에도 거대한 옥토를 만들었다. 광활한 갯벌, 그러니까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바로 그 새만금 갯벌 지대다. 지평선 들녘은 갯벌과 만나고, 갯벌 반 바다 반이 어울려진 끝 모를 수평선으로 이어진다.

702번 지방도를 따라가다 보면 나오는 진봉 반도 끝머리 심포항. 멀리 고군산군도가 가물거리고, 누런 회색빛의 갯벌은 작열하는 햇빛에 은빛의 광채를 반사한다. 방조제 공사로 새만금 갯벌 지대가 많이 죽었다고 하지만, 이곳은 여전히 생생하다. 주민들은 예년에 비해 올해 오히려 생합(백합)이 더 많이 잡힌다고 말했다. 물 흐름이 바뀌면서 생긴 일시적 현상이겠지만, 어쩌면 전설의 땅이 될지도 모르는 그 현장에 발을 한번 담궈 보자.

심포항 뒤편에 자리잡은 전봉산 깎아지른 절벽에는 망해사가 있다. 망망대해 앞에서 깨치는 연기(緣起)의 도리다. 사찰 뒤편 솔숲을 올라가면 전봉산 정상이다. 전망대가 조성돼 있는데, 기막힌 장소다. 동으로는 들녘의 지평선이, 서로는 갯벌 반 바다 반의 수평선, 북으로는 강과 산이 어우러진 만경강 하구, 남으로는 진봉반도 끝 포구가 오묘하게 펼쳐져 있다. 그 절묘한 자리에 낙조가 떨어지면, 자연은 빛깔의 마법을 부리며 천상에 숨겨둔 환상적 경치 한 자락을 지상에 슬쩍 흘린다.

/김제=글·사진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가는길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서김제 인터체인지에서 빠져 29번 국도를 탄다. 벽골제를 가기 위해선 김제읍 방향 29번 국도, 심포항을 가기 위해선 만경 방향으로 가다 702번 지방도를 탄다. 서울에서 대략 3시간 정도. 고속버스는 서울∼김제간 1시간 10분 간격으로 하루 12회 운행하고, 호남선 열차가 하루 24회 다닌다. 또 철도청은 2∼5일 오전 8시10분 서울역을 출발해 11시25분 김제역에 도착하고, 오후 7시35분 김제에서 되돌아가는 축제 관광열차를 운행한다. 김제시 홈페이지(www.egimje.net). 김제시청 지평선축제제전위원회 (063)540-3324.

머물곳

심포항 부근에는 사보이장(063-544-6790) 심포장모텔(545-1662) 두 군데. 금산사 입구에는 비교적 규모가 큰 동원장 (548-4300) 모악산유스호스텔(548-4402) 모악산장(548-4411), 계룡마을(543-0701) 등이 있다. 시내에는 귀빈장(544-2233), 덕수장(544-0149), 동아파크장(545-2288) 등이 20실 이상의 여관이 20여곳 있다.

먹거리

심포항에선 생합 등 해산물, 모악산의 금산사 입구에선 산채비빔밥 등을 맛볼 수 있는 식당가가 밀집해 있다. 생합을 도매 가게에서 직접 사면 1㎏에 2,000∼4,000원선. 횟집에서 불에 구워 요리한 것을 먹을 경우, 한 접시에 2만원이다.

서해안의 갯벌지역 중 조개가 아예 없거나 출입이 금지된 곳이 많지만 이곳은 싱싱한 조개를 직접 캘 수 있으면서 출입도 자유롭다. 주변 가게에서 1,000원 정도의 대여비로 갈고리, 장화 등을 빌릴 수 있다. 단 너무 멀리까지 나가는 것은 위험하기 때문에 조심해야한다. 축제기간이자 개천절인 3일에는 정오부터 물이 빠져나가 오후 6시 무렵 물이 찬다. 물때 문의는 김제수협 진봉출장소 (063)545-2612.

내일부터 농경문화 체험 "지평선 축제"

2일부터 5일까지 김제시 벽골제 유적지를 중심으로 열리는 제5회 지평선 축제에서는 전통 농경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70여가지의 풍성한 행사가 마련된다.

우선 벽골제 앞 광장에는 짚울타리를 두루고, 우물, 장독대, 전통부엌에 전통음식상이 전시된 전통농촌마을이 재현된다. 이곳에서 새끼꼬기, 가마니짜기 등을 체험할 수 있다. 바로 옆에는 토속음식을 먹을 수 있는 먹거리 장터도 빠지지 않고 자리잡는다.

하수아비들이 늘어선 인근 논둑에선 메뚜기도 잡고, 덜커덕거리는 우마차에 올라타 둑길을 달릴 수 있다. 들판에선 벼를 베어 묶고 지게로 져 나르는 등 수확 과정에도 참여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인간허수아비 퍼포먼스, 쌍용놀이, 가을포크송페스티벌, 줄다리기, 사물놀이 등의 공연도 마련된다. 4일에는 민속씨름대회, 5일에는 만경강 하구 만경대교에서 망둥어낚시대회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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