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29일 당초 계획을 앞당겨 결국 민주당 탈당을 선택한 것은 더 이상 민주당 당적을 유지할 정치적 명분이나 실익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이미 통합신당 지지 의사를 밝혔기에 헌정사상 처음으로 집권 초에 '무당적 대통령'이 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을 뿐이다. 다만 탈당에 따른 민주당 지지자의 상실감을 최소화할 수 있는 시점을 택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탈당 압박이 거세지면서 이를 둘러싼 논란이 정쟁거리로 부상, 노 대통령의 운신의 폭은 갈수록 줄어들었다. 여기에 감사원장 임명동의안이 부결됨으로써 신4당 체제 아래서의 한계가 극명하게 드러난 것도 조기탈당의 요인이 됐을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탈당이 '어쩔 수 없이 이뤄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탈당' 대신 '당적 포기'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청와대 정무수석실은 노 대통령의 탈당을 국회와의 새로운 관계 설정의 계기로 삼겠다며 이날 대통령의 당파적 이해 초월 국정책임자로서의 대통령 위상 정립 국회의원의 자율적 의사결정 환경 조성 등의 목표를 노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청와대는 또 개혁입법, 이라크 파병 등 각종 국정현안을 협의하기 위해 정당 지도부 등을 두루 만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이는 노 대통령이 여러 차례 밝혔지만 지지부진했던 미국식 대통령제의 모색을 실천에 옮기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이날 '아시아―유럽 프레스 포럼'에 참가한 언론인과 만난 자리에서 통합신당 창당, 자신의 민주당 탈당 등을 내용으로 하는 정치권의 변화를 '창조적 파괴', '창조적 와해'라고 규정함으로써 통합신당에 대한 지지와 한나라당 및 민주당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거듭 분명히 했다. 이는 국회와의 새 관계설정이 쉽지 만은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뿐만 아니라 청와대측은 정기국회가 끝난 이후 노 대통령의 신당 입당 여부를 다시 검토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에 노 대통령의 대(對)국회 관계 구상은 잠정적인 속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 청와대 내에선 아직 양론이 대립하고 있다. 원만한 국정운영을 위해 무당적을 유지, 사안별 정책연합을 해야 한다는 것은 온건론에 속한다. 반면 일부 386출신 등 소장파는 내년 총선에서의 정면돌파를 위해 통합신당에 정치적 운명을 걸자는 강경론에 기울어 있다. 한 관계자가 "총선 이후에 당적을 택할 바에야 총선 전에 거취를 정하는 것이 옳으며, 원내에서 대통령을 대변할 정당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 것도 정부―국회의 새 관계가 여전히 실험중임을 보여준다.
/고태성기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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