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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전용관]에로적 상상력을 키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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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전용관]에로적 상상력을 키워라

입력
2003.09.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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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극소수 극장에서만 개봉한 영화 '세크리터리'(사진)는 에로 애호가들에겐 후끈 달아오르는 영화였다. 사도·마조히즘 무비, 쉽게 말하면 때리고 맞는 영화. 자신의 몸을 학대하며 쾌감을 느끼는 여자가 괴팍한 성적 취향의 변호사를 모시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세크리터리'는 로맨틱 코미디 장르를 재해석하려는 노력이 가상한, 꽤 공들인 영화다. 이 영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에로티시즘 영화의 상상력'이다. 한국 에로 영화에 가장 부족한 요소다.우리에게 섹스는 섹스일 뿐이었다. 영화 속에 섹스를 담는다는 사실만으로 가슴이 벅차 올랐을 뿐, 그걸 가지고 뭔가 다르게 사고 칠 생각은 못했다. 그러기에 한국영화의 에로적 상상력은 변강쇠가 방뇨로 폭포를 만드는 수준이었다. 우리의 에로틱 판타지는 90년대에 들어서기 전까지는 질퍽한 정서에 눌려 부자유스러운 장르 법칙에 갇혀 있었으며, "마님" "이놈이!" "헉∼"으로 이어지는 삼단논법을 벗어나지 못했다. 에로는 허용하되 발칙한 공상은 불허했던 시대의 기형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90년대 한국 에로의 불온한 상상은 어디에서 시작했을까? 개인적으로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룰 꼽고 싶다. 이 영화는 이른바 '퓨전 사극'의 선구적 작품이다.(조선시대 아낙들이 캉캉 춤을 춘다면, 말 다 한 거 아닌가?) 얘기는 간단하다. 동네에 나무 막대기 하나가 돌아다닌다. 그 앞에서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라고 말하면 막대기는 건장한 남자로 변하고 놀라운 성적 서비스를 감행한다.

이 영화가 신선했던 건 섹스에 대한 경직된 묘사를 비웃고 사극의 테두리를 넘나들며 에로 판타지를 펼쳤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여성의 건강한 성욕을 그린다. 하지만 이후에 등장한 자천타천 '에로 작가'들은 자기 틀 안에 갇혀 버린다. 장선우는 장정일의 힘을 빌어 '너에게 나를 보낸다'와 '거짓말'을 만들지만, 안타깝게도 포르노그래피 논쟁만을 남겼을 뿐이다. '너에게 나를 보낸다'에서 총이 남근으로 변하는 애니메이션 장면이, 그가 보여줄 수 있는 섹슈얼한 환상의 전부였다. '거짓말'에선 곡괭이 자루 정도? 여균동의 '맨'이 있긴 했지만, 그가 그린 공간엔 상상력보다는 콤플렉스가 가득했다. 이후 홍상수와 김기덕이 작가라는 신분으로 섹스를 이야기했지만, 리얼함 혹은 강렬함에 집착할 뿐이었다.

다시 '세크리터리'로 돌아가자. 이 영화는 사도·마조히즘이라는 '변태 컨셉'을 통해 장르적 시도는 물론 권력 관계에 대한 탐구와 정신분석학적 테마까지 이끌어낸다. 그런데도 이 영화가 딱딱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섹스라는 재료를 장난감 블록처럼 사용해 자신만의 성을 쌓는 솜씨 때문이다. 그 유연한 자세! 뭔가 가슴을 적시는 에로를 꿈꾼다면 반드시 익혀야 할 미덕이다. 괜히 섹스로 도 닦는 듯한 어설픈 자세는 버리고 말이다.

/김형석·월간 '스크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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