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박은주기자의 컷]"저기요, 숫자는 거짓말 하거든요!"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박은주기자의 컷]"저기요, 숫자는 거짓말 하거든요!"

입력
2003.09.30 00:00
0 0

"저기요, 서류는 거짓말을 안 하거든요." '살인의 추억'에서 서울에서 내려온 형사는 입버릇처럼 이렇게 말하다가 결국 서류 때문에 억장이 무너진다. 바꾸어 말하면 수치나 통계 같은 것이 진실과 가깝다고 믿었던 것이다.극장 수입이 객관적으로 집계되지 않으니, 관객이 의지할 만한 수치는 영화 예매율 정도가 고작이다. 영화 보기에 실패하지 않기 위해 늘 '적들의 동향'을 살피는 관객에게 인터넷 예매율이란 영화 흥행 예보 같은 것이다. 높은 예매율은 한반도 북서쪽에 형성된 강한 고기압처럼 쾌청한 흥행 전망을 예보한다.

문제는 고기압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더라는 것. 영화사나 홍보사가 마음 먹고 예매율을 조작하려 들고, 예매 사이트가 그저 모른 척 하고 눈감아 주면 개봉 후 관객 점유율과 상관없이 예매율은 주유소 주유기의 숫자판처럼 척척 올라간다.

예매율을 허수로 올리는 데는 이런 방법이 있다. 가까운 친구를 동원해 수십장씩 예매하도록 하기. 사이트별로 당일에도 취소가 가능해 주로 이런 방법을 많이 이용한다. 부작용으로는 작전에 참여한 친구들이 아무 생각 없이 이 일을 떠벌리고 다닌다는 점이다. 이런 부작용이 속출하자 어떤 사이트는 취소 수수료를 부과하는 등 대안을 강구하고 있지만, 이미 떨어진 신뢰를 회복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또 다른 방법은 영화사와의 계약에 따라 영화 티켓을 구매해야 할 기업이나 협찬사에게 특정 사이트에서 무더기로 사줄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예매율은 마구 올라간다. 특히 예매하는 사람이 적은 주초에 이렇게 많은 양의 표를 사주면, 예매 순위 1위로 올라서는 것도 어렵지 않다. 충무로에는 "어느 사이트는 광고를 주면 그만큼 예매율로 환산해 준다" "어느 영화사는 자기네 표를 무더기로 사들이고 공갈 광고를 하고 있다"는 등의 소문이 무성하다. 예매율이 뜬금 없이 높아 의심 받은 영화의 개봉 후 스코어는 역시 대부분 별볼일 없다.

인생이란 늘 숫자에 속는다. '오늘 비올 확률 59%'에 우산을 들고 나왔다가 공연히 우산만 잃어버린 적이 한 두 번이었나. 학력고사에서 전국 석차 상위 3%에 들었던 분들, 지금도 과연 '상위 3%'의 인생을 살고 계신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온 몸으로 증명하기 위해 나이 값 못하는 분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컷!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