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東京)지방재판소는 29일 일본군이 2차 대전에 패해 철수하면서 중국 곳곳에 버린 화학무기로 피해를 본 중국인들에게 정부가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재판부는 피해 중국인과 유가족 등 13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2억 엔(약 20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방치된 화학무기로 인한 피해를 방지하는 조치를 정부가 게을리한 부작위는 위법한 공권력 행사"라며 원고 전원에게 모두 1억9,000만 엔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화학무기를 유기한 것은 구 일본군이 전쟁에 부수해 조직적으로 저지른 행위"라고 지적하고 "정부가 군 관계자로부터 사정을 들어 중국 정부에 정보를 제공했다면 피해 발생을 예견하고 회피할 가능성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번 판결은 일본의 침략 및 식민지배 피해 관련 소송에서 민간인이 실질적인 배상 판결을 받은 첫 사례로 평가된다. 그러나 2차대전 종전 이전에 발생한 피해 사실에 대해 종전 이후에 제대로 대처하지 않은 점을 문제 삼은 것이어서 군대 위안부나 징용 피해자의 경우처럼 종전 이전 피해 자체에 대한 소송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단언하기는 어렵다.
특히 지난 5월 다른 중국인 화학무기 피해자 5명이 도쿄지방법원에 제기한 비슷한 소송에서는 다른 재판부가 "주권이 미치지 않는 중국에서 정부가 피해 발생을 회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며 원고 패소 판결한 바 있어 이번 판결도 최종 결과는 최고재판소(대법원)까지 가 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판결에서 재판부는 정부측이 "1972년 중·일 공동성명에 의거해 전쟁 배상 청구권은 끝난 것"이라고 주장한 데 대해 "정보 제공 등 피해 방지 노력은 종전 이후에도 할 수 있는 조치였다고 판단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정부측이 "민법상 불법행위가 있은 시점으로부터 20년이 지나면 손해배상 청구권이 없어진다"는 의견을 낸 데 대해서도 "원고들이 중국 내 사정으로 사고 발생 후 장기간 출국할 수 없어 소송 제기가 어려웠던 사정을 고려할 때 20년 시효 적용을 제한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중국 정부 집계에 따르면 일본군이 2차대전 때 버리고 간 화학무기는 70여만 개로 지금까지 2,000여명의 피해자가 발생했다. 일본은 99년 이들 화학무기를 2007년까지 모두 회수하겠다는 각서를 중국측과 교환하고 회수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각서에는 피해 보상에 관한 규정은 없다.
일본 정부는 지난 8월 중국 헤이룽장성 치치하얼시 건설 현장에서 인부들이 화학무기를 절단하다 독가스에 노출돼 1명이 죽고 40여명이 부상하자 위로금 1억 엔을 지급하겠다고 제의했으나 중국측은 위로금이 아니라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며 수령을 거부했다.
/도쿄=신윤석특파원 y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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